삶의 무게를 털어놓은 고백 버튼
고단한 마음을 여는 데 고작 5분
말하고 들어준 서로가 고마울 뿐
내 연구실은 학교에서 높은 지대에 있다. 오르내리기 숨차서 그렇지 산자락에 안겨서 아늑하고 호젓하다. 산새 소리가 끊이지 않고, 철 따라 변하는 산색을 지켜보는 재미가 좋다. 여름밤이면 멧돼지가 뒤꼍까지 내려와 산죽을 갉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그날 아침에는 좀 울적하였을 것이다. 자지레한 일들로 정신이 없었고 수업도 많은 날이었다. 며칠 동안 씨름한 서류를 챙겨 들고 대학 행정동으로 바삐 내려가는 길이었다. 금세 벚꽃이 져 내리고 있었다. 상실감이 들었다. 벚꽃 질 때면 항상 앓는 마음이라는 걸 떠올렸다. 벚꽃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실상 꽃그늘에 온종일 앉아 있더라도 그 마음을 벗지 못하리라. 그건 내 탓이 아니다. 장엄한 풍광에 뛰어들면 인간은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 생각에 잠겨 길을 터벅터벅 내려갔다. 오 분 정도 걸리는 길이었다. 초로의 아주머니 한 분이 작고 해진 배낭을 메고 앞서 걷고 있었다. 땀 식은 몸에 어깨와 머리에는 싹잎이며 떨켜 같은 게 잔뜩 묻어 있었다. 배낭에서 삐져나온 나물 줄기 한 가닥이 보였다. 뒷산에 들어 산나물을 채취하고 오는 모양인데 나는 알은체하느라고 요새 무슨 나물이 좋냐고 여쭈었다.
아주머니는 훔치는 시선으로 힐끗 쳐다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은 퍽 지쳐 보였고 경계하는 기색마저 비쳤다. 괜히 말을 걸었나 싶어 겸연쩍었다. 아주머니가 미안했던지 “난 나물 잘 몰라요. 밭에 갔다 오는 길이에요” 하고 대답했다.
아, 하고 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학교 뒷산 자락의 유휴지에 텃밭을 일구는 주민들이 있다. 텃밭이 학교 부지여서 무단 경작을 금해야 한다는 소리를 지나는 말로 들은 적이 있었다. 늙고 큰 감나무가 있는 걸 보면 예전에 집터였을 듯싶고 텃밭 역시 오래전부터 인근 주민들이 나눠 짓고 있나 보았다. 거기에 한 번쯤 올라가 보고 싶었는데도 밭으로 드나드는 숲길을 찾지 못했다.
“텃밭 좋지요. 소일거리도 되고 건강에도 좋고요.”
심상한 대화였으므로 그쯤에서 우리는 자기 가던 길로 가도 좋았을 것이다. 아주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난 살려고 텃밭 해요.”
나는 멈칫했다. 길을 반쯤 내려와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푸성귀를 거둔다는 소리일까. 텃밭이라야 손바닥만 할 텐데 거기서 거둔 게 얼마나 가용에 보탬이 될까도 싶었다. 아무튼 그 적나라한 실토에 나는 위축되었다.
“아픈 아들이 있는데 겨우 재워놓고 올라왔어요.”
아주머니는 뜸 들여가며 나직나직 말했다. 어린 아들을 두었을 리 없고, 나는 궁금증으로 아주머니를 건너보았다. 아주머니는 좀처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마흔 넘은 아들이제라…. 고등학생 때 친구들한테 맞아서 망가졌어요. 순하디순한 애가 사나운 바보가 되었어요. 통 잠을 못 자요.”
아들이 새벽에 잠들면 아주머니는 텃밭으로 달려온다고 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주머니는 울기도 하고 기도를 한다고 했다.
“나무에 빌고 돌멩이한테도 빌고 땅에도 빌어요. 하늘이 있겠어요? 그냥 내 속 편하자고 하는 짓이지. 저기 가서 숨 쉬고 와요.”
나는 해드릴 말이 없었다. 얼마나 힘드시냐고 그 말만 되뇌었다.
이제 아주머니와 나는 갈림길에 섰다. 아주머니는 두 손 모아 내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습니다.”
내가 뭐라도 된다는 듯이 기도하듯 말했다. 나도 덩달아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는 길을 건너 휘적휘적 교정을 내려갔다. 나는 저절로 우리가 걸어서 내려온 길을 돌아봤다. 무슨 일이 일어난 듯한데 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나같이 정신없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주어서 고마울 뿐이었다.
전성태 교수 소설가·국립순천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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