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시대가 편리해진다. 요즘 짓는 아파트는 현관을 열고 엘리베이터 복도에 설치된 버튼을 ‘딸깍’ 누른 뒤 종량제봉투를 넣으면 쓰레기를 자동으로 버려 준다고 한다. 얼마나 간편한 세상인가. 무거운 종량제봉투를 들고 끙끙대며 1층에 있는 공용 쓰레기장까지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니 말이다. 하지만 농촌의 상황은 어떨까.
지난 주말 결혼식을 앞두고 경북 예천군에 사는 예비 남편의 할머니 댁을 찾았다. 홀로 사는 할머니의 집은 오래된 나무 평상이 딸린, 사람의 나이로 치면 50살이 넘은 시골집이었다. 파란색 페인트로 칠한 슬레이트 지붕이었는데, 30년 전만 해도 초가지붕이었다고 예비 남편이 귀띔했다. 87세의 할머니가 지내는 집 여기저기를 둘러보니 마당 아궁이 한쪽에 이질적이게도 20ℓ짜리 연두색 쓰레기 종량제봉투 한 묶음이 놓여 있었다. “어디서 준 거예요?” “군에서 쓰레기 태우지 말고 버리라고 줬어.” 농촌의 생활 쓰레기와 영농 부산물 소각 문제가 대두되자 군에서 화재를 줄이고자 내놓은 방책이었다.

고된 농사일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의 집에는 꽤 많은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20ℓ짜리 종량제봉투에 쓰레기를 모아 보니 4㎏은 족히 되는 무게였다. “제가 쓰레기 버리고 올게요.” “아니다, 내가 할 테니 앉아 쉬거라.” 할머니의 거듭된 만류에도 종량제봉투를 들고 마당을 나섰다. 이 마을 공동집하장은 700∼800m 떨어진 마을회관에 있다고 했다. 호기로운 출발과는 달리 곧 후회가 밀려왔다. 수은주가 24도를 가리키는 날씨에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고, 팔이 저리기 시작했다. 빨리 걸었다고 자신했는데 5분 넘게 걸렸다. 할머니가 더위와 추위를 뚫고 걸어오기에는 쉽지 않은 거리였다. 그것도 종량제봉투를 들고 말이다. ‘나라면? 내가 이곳에 산다면?’이라는 물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과연 도시에서처럼 종량제봉투에 일반쓰레기를 담아 분리하고, 재활용품 분리배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말이다.
사실 농촌에서 쓰레기를 소각하는 건 흔한 일이다. 농촌 주민 대부분은 집 앞에 작은 소각장을 만들어 놓고 생활 쓰레기를 태워 왔다. 평생을 말이다. 농촌의 불법 쓰레기 소각으로 매년 수많은 주민이 목숨을 잃고, 작은 불씨가 산불로 번져 대규모 인력이 투입되고 산림이 잿더미가 되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됐다. 이들도 불법소각으로 인한 화재의 위험성은 대부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가 바퀴 달린 보행 보조기구에 의지해 걸음을 옮기는데 이들이 종량제봉투를 집 앞도 아닌 공동집하장까지 버리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쓰레기를 어떻게 태우느냐, 잘못됐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다만 고령의 농촌 노인이 쓰레기를 제대로 배출할 수 있게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예컨대 공공근로인력을 투입해 산골마을 쓰레기를 수거하고 쓰레기 배출 교육을 강화하는 등의 대책 말이다. 할머니를 뒤로하고 예비 남편과 시골집을 나섰다. 차창 밖 사이드미러로 할머니가 점처럼 보일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오래된 할머니의 보행기구와 연두색 종량제봉투가 오버랩되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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