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벗어나야 한다면 오히려 빨리 벗어나고 싶다. 단두대에 목을 걸고 있다 해도 1360만 도정의 책임은 무겁고 힘든 짐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인 2020년 2월24일 새벽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이다. 당시 그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2심에서 지사직 상실형이 선고된 가운데 상고심 선고를 앞두고 있었다. 대법원은 해당 사건을 특별히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대법원 재판은 거의 대부분 대법관 4명씩으로 구성된 3개의 소부(小部)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매우 중요하거나 대법관들 의견이 엇갈리는 사건의 경우 3개 소부의 대법관 12명에 대법원장까지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로 넘어간다. ‘단두대’라는 표현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기다리는 이 전 대표의 절박한 심정이 느껴진다.

이 전 대표 사건의 경우 그와 인연이 깊은 대법관 1명이 기피를 신청하고 빠지면서 대법원장 등 12명이 심리에 참여했다. 2020년 7월16일 마침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판결을 선고했다. 대법관 7 대 5 의견으로 원심 파기환송이 이뤄졌다.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2심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2심 재판부인 수원고법에 돌려보낸 것이다. 이로써 이 전 대표는 경기지사 자리를 계속 유지함은 물론 2022년 3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도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목은 단두대에 올려졌고, 이제 (…) 집행관의 손 끝에 달렸다”라며 신세를 한탄했던 이 전 대표로선 뛸 듯이 기뻤을 것이다. 결국 그는 2022년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뽑혔고,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 간발의 차이로 지며 차기를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 전 대표는 대선 선거운동 기간 중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는 선거법 혐의로 다시 재판에 넘겨지는 얄궂은 운명에 처한다. 기소 후 2년여 지난 2024년 11월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부가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형량이 그대로 확정되면 이 전 대표는 국회의원직을 상실함은 물론 향후 5년간 피선거권도 박탈을 당한다. 2027년으로 예상되는 대선에 도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전 대표에 비판적인 진영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사법 리스크가 더는 리스크가 아닌 현실이 되었다며 ‘정치인 이재명’의 생명도 이제 끝났다고 단언하는 이들마저 있었다. 하지만 올해 3월 서울고법 2심 재판부는 1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 대표가 기사회생한 것은 물론이다. 그의 지지자들은 열광했다.

대법원이 22일 이 전 대표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조희대 대법원장이 직접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하는 노태악 대법관이 이해 충돌을 이유로 기피를 신청하고 빠지면서 조 대법원장 등 12명이 심리를 맡게 됐다. 이 전 대표는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에 따른 6·3 조기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경선에 출마한 상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며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로 꼽힌다. 일각에선 대법관들이 재판을 최대한 서둘러 대선 전에 결론을 내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원심 확정이냐 파기냐에 이 전 대표 본인은 물론 대한민국의 앞날도 달려 있다. 이 전 대표는 2020년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 차가운 단두대 앞에 서 있는 심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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