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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22 23:08:45 수정 : 2025-04-22 23: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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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정책 반기 든 대학 압박
日은 학계 대표기구 법인화 추진
한쪽으로 몰아가는 권력에 맞서
독립성 사수 위한 노력 성과 있길

자신이 가진 권력이라면 모든 걸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미국 명문대학들을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타깃이 하버드대다.

“하버드는 웃음거리”, “증오와 어리석음만 가르치고 있다”, “더 이상 제대로 된 교육기관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지난 16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의 일부다. 눈 밖에 난 대상에게 쏟아내는 거칠기 짝이 없는 언사는 미국 최고의 명문대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강구열 국제부장

트럼프 대통령은 하버드대가 반(反)유대주의를 근절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강하다. 이달 초 하버드대에 보낸 서한에서는 캠퍼스 내 마스크 착용 금지, 운영 및 입학 제도 변화,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프로그램 폐지 등을 요구했다.

정부와의 갈등이 달가울리 없는 하버드대는 애초 협상을 시도했으나 요구사항이 선을 넘었다고 판단한 뒤에는 저항 의지를 분명히 했다. 앨런 가버 총장은 교내 구성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 대학은 독립성을 포기하거나 헌법상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어떤 정부도 사립대학이 무엇을 가르치고 누구를 입학시키고 고용할 수 있는지, 어떤 분야의 연구와 탐구를 추구할 수 있는지를 지시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정부는 하버드대의 자금을 옥죄는 것으로 즉각적이고 노골적인 반응을 보였다. 3조원 이상의 정부 보조금 동결 방침을 밝혔고, 외국에서 받은 자금 관련 기록을 제출하라고 했다. 유사한 위협이 하버드대뿐만 아니라 컬럼비아대, 프린스턴대 등 트럼프 대통령이 “좌파에게 지배당하고 있다”고 했던 명문 사립대로 향하고 있다.

미국 정부처럼 요란하지는 않지만 일본 정부도 장기간에 걸쳐 집요하게 비슷한 일을 벌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일본학술회의를 특수법인화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일본학술회의는 ‘학자들의 국회’로 불릴 만큼 일본 학계를 대표하는 기구다. 정부 예산 약 10억엔(약 101억원)을 지원받지만 ‘국가 특별기관’으로 독립성을 폭넓게 인정받아 왔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제출한 법안이 통과되면 총리가 임명하는 감사 2명과 활동을 심사하는 평가위원회가 설치되어 독립성이 상당 부분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일본 정부는 일본학술회의가 정부 정책에 호응하지 않거나 오히려 반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불편함을 드러내 왔다. 대표적인 것이 전쟁에 쓰일 수 있는 과학연구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일본학술회의는 2017년 발표한 성명에서 “대학, 학술 연구기관이 군사 연구에 참여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관·민 협력을 방위력 강화의 지렛대로 삼으려 하는 일본 정부로서는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데 소극적이었던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2020년 9월 스가 요시히데 당시 총리가 일본학술회의 회원 후보 6명을 임명하지 않으며 본격적인 길들이기에 나섰고, 그것이 지난달 정부 법안 제출로까지 이어졌다.

정부와 학계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히는 것이 독립성이다. 주요 국가에서 대학, 학술기관 등에 상당한 독립성을 부여한다. 공동체가 풀어야 할 과제에 대해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응책을 학계가 내놓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가령 기후변화나 전염병의 만연 등과 같은 심각한 위기 앞에서 정치적 당파성이나 경제적 손익계산이 주요하게 작동할 경우 학계가 내놓는 진단, 처방이 제대로 된 것일 리 없다. 미국, 일본 정부의 조치에서는 필요에 따라 사람들을 하나의 생각으로 몰아가려는 권력의 의지가 느껴진다는 점에서 섬뜩하기도 하다.

미국 대학들은 하버드대를 필두로 독립성과 헌법상 권리를 포기하지 않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 학계는 정부에 법안 폐기를 요구하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권력에 맞선 이들의 저항이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란 예측이 적지 않다. 그러나 권력의 시간은 짧다. 학문의 자유는 긴 시간 축적된 것이고, 앞으로도 그러해야 한다. 그것에 기대를 걸어 본다.


강구열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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