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 공군 학사장교 후보생으로 경남 진주 교육사령부에 입대한 기자는 이듬해 소위 계급장을 달고 오산기지에 배치됐다. 앞으로 3년간 복무할 부대에 가보니 기존의 하사관(下士官) 명칭을 부사관(副士官)으로 고치는 데 필요한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김대중(DJ)정부가 ‘사관(장교)보다 아래’라는 뜻의 하사관을 버리고 2001년부터 ‘사관에 버금가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부사관으로 부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름을 바꿨다고 부사관에 대한 인식이나 대접이 얼마나 달라졌느냐’ 하며 냉소할 이도 물론 있겠으나, 부사관의 위상 및 사기 제고 측면에서 DJ정부의 조치는 옳은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부사관의 꽃’으로 불리는 직위가 바로 주임원사다. 대대급 이상 부대에 보임되는 주임원사는 장교를 제외한 부사관과 병사들을 전부 대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부대에 속한 부사관 및 병사들의 인사 관리에 있어 대대장 등 지휘관을 보좌하는 막중한 자리다. 뭔가 고충을 토로하는 부사관이나 병사들과 상담하고 그 내용을 지휘관에게 보고한 뒤 후속 조치를 이끌어내는 것 또한 주임원사가 해야 할 일이다.
합동참모의장이나 육·해·공군 참모총장을 보좌하는 합참 및 각군 주임원사의 경우 장성에 상응하는 예우를 받는다. 미군의 경우 부대의 러더십을 소개하는 홈페이지 코너에 지휘관과 주임원사가 나란히 등장하는 사례가 흔하다.
할리우드 전쟁 영화를 보면 부사관의 존재 가치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재현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는 중대장 존 밀러 대위(톰 행크스)를 충직하게 보좌하는 마이크 호바스 중사(톰 시즈모어)가 인상 깊다. 미 육군이 밀러 대위의 팀에 부여한 임무가 탐탁치 않지만 행여 병사들이 중대장에게 반항하는 일이 없도록 중간에서 철저히 관리한다.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위워솔저스’(2002)의 바실 플럼리 원사(샘 엘리엇)는 어떤가. 대대원을 잃은 뒤 자책감에 사로잡힌 대대장 할 무어 중령(멜 깁슨)을 격려하고 다시 일으켜 세워 결국 월맹군 포위망을 뚫는 승리를 이뤄내고 만다.

18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윤성열 대한민국부사관정책발전협의회 의장이 ‘전쟁과 부사관의 역할’이란 조금은 독특한 주제의 강연을 했다. 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회장 백승주)가 운영 중인 ‘용산 특강’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윤 의장은 “현대전에서 부사관은 소부대 전투 지휘자로서 장교의 명령을 이행하고 병력을 통솔하며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핵심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 당시 용맹을 떨친 국군 부사관들을 소개하며 “부사관이 군의 중추로서 많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부사관 지원자가 갈수록 줄어든다는데 윤 의장의 말이 한줄기 희망을 선사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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