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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에 엄마가 집을 나갔다. 할머니 밑에서 부단한 노력 끝에 유명 아이돌 가수로 성장한 고 구하라씨 얘기다. 그녀는 큰 세상을 펼쳐보기도 전에 ‘악플’에 시달리다 지난해 11월 29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비정한 엄마’는 그녀의 편안한 영면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20년 만에 느닷없이 딸 장례식에 나타나 재산의 절반을 요구했다. 상속인의 결격사유에 ‘부양의무 소홀’은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의 ‘맹점’을 교묘히 파고든 것이다. 민법은 상속인 결격사유를 살인·상해 등 범죄, 사기·강박 등 유언을 방해하는 행위 등 5가지로 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부양의무 개념은 상대적이라, 이를 결격사유로 본다면 법적 분쟁이 빈번해질 수 있다’고 결정한 바 있다.

자식이 죽자 부모가 재산·보상금 등을 챙겨가는 것은 인륜에 비춰볼 때 볼썽사납다. 구씨의 오빠가 상속제의 부당함을 담은 일명 ‘구하라법’을 청원했지만, 20대 국회는 끝내 외면했다. 구씨의 오빠는 어제 “평생을 슬프고 아프게 살았던 동생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며 눈물을 쏟아냈다. 부양을 조건으로 상속받은 자식들이 ‘나 몰라라’ 하자 이를 돌려달라는 부모들의 ‘불효 소송’도 급증하는 추세다. 19대 국회에서 불효를 막겠다는 ‘효도법(불효자 방지법)’까지 발의됐다니 말문이 막힌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다. 죄책감에 자신의 상속분을 포기한 구씨 아버지 심정이 대다수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과거 우리 사회 주력이던 730만 베이비붐(1955∼63년 출생) 세대를 보라. 자식의 진학·취업 걱정에 노심초사다. 자립할 나이에도 부모에게 기대는 ‘캥거루족’이 늘고 있다. 자식이 취업했다고 끝난 게 아니다. 결혼·육아까지 오롯이 부모의 몫이다. 은퇴를 앞둔 처지에 노부모 부양까지 챙기려면 자신의 노후 준비는 ‘언감생심’이다. 최서원의 딸 정유라는 “능력이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고 해 국민의 공분을 샀다. 돈 없는 부모를 원망할 순 없지 않은가. 코로나19 사태로 가족 간 만남조차 부담스러운 가정의 달이 더욱 우울하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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