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으로 변해버린 한국 여행
차량보다 보행자 먼저인 日처럼
운전문화 근본적 개선 고민해야
이달 초 도쿄 고토구에 있는 운전면허시험장에 다녀왔다. 차일피일 미루던 현지 면허증 발급을 위해서였다.
외국인이 일으키는 교통사고 증가를 이유로 지난달부터 외국인 대상 면허 발급 요건을 상당히 까다롭게 바꿨다지만, 아직 한국인은 해당 사항이 없다. 한국은 별도 필기·실기 시험 없이 면허를 전환해주는 29개국에 속하기 때문이다. 대사관 영사부에서 공증받은 한국 면허증 번역본 등 몇 가지 서류만 구비해 가면 된다.
‘스피드가 착한 당신을 귀신으로 만든다.’ 신청서 작성을 마친 뒤 곳곳에 붙은 경고 문구와 시험장 풍경 등을 구경하며 기다리고 있자니, 인지를 구입해서 시력 검사장으로 가란다. “일단 안경 벗고 재 볼까요.” 나안 시력을 먼저 측정한 뒤 안경을 다시 쓰고 검사를 이어갔다. 시험관은 “운전할 땐 안경이나 렌즈를 꼭 착용하셔야겠네요”라고 했다. 긴 기다림 끝에 발급받은 면허증에도 ‘면허 조건: 안경 등’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날 오후 어느 20대 일본인 남성의 인터뷰가 담긴 기사를 접했다. 가족과 서울 여행 중 탑승한 택시가 중앙선을 침범해 사고를 내는 바람에 그의 생후 9개월 딸이 의식불명 중태에 빠졌다. 그는 택시 운전사가 갑자기 속도를 높였고 당황하는 기색도 못 느꼈다며 “우리가 ‘스톱, 브레이크’라고 외쳤지만 소용없었다”고 했다. 페달을 잘못 밟았다는 운전사 해명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어조였다. 기사에 붙은 사진을 보니 남산 중턱에 놓인 소월로가 사고 장소인 듯했다. 기억이 맞는다면 제한속도 시속 50㎞에 편도 2차로 구간이다.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몇 건의 사고가 오버랩됐다. 동대문 인근에서 만취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50대 일본인 여성, 강남에서 마찬가지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사망한 캐나다인…. 며칠 뒤, 9개월 아기도 끝내 숨을 거뒀다.
도쿄 부임 후 느낀 한·일 간의 커다란 차이 중 하나가 운전 매너다. 일단 경적이 거의 울리지 않는다. 보행자나 다른 차량을 재촉하지 않고 느긋하게 운전한다. 신호등이 없는 좁은 교차로에선 보행자가 보이면 일단 정지하고 본다. 습관처럼 멈춰 섰다가 ‘안 건너고 뭐 하세요’라는 듯한 운전자 시선과 마주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집 앞 삼거리는 늘 횡단보도 한참 뒤쪽에 차들이 서 있어 의아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곳에 정지선이 그어져 있었다.
택시 기사도 제복 입는 직업이라 그런지 철저한 정속 운전이다. 버스 기사가 운전하다 화를 내는 모습은 몇 번 봤다. 차량이 멈추지도 않았는데 승객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릴 준비를 할 때였다.
운전할 때 스트레스가 훨씬 덜하다. 운전석도 주행방향도 반대여서 처음엔 낯설지만, 차선 양보도 잘해 주고 뒤쪽에서 압박감을 주지도 않는다.
일본인의 천성 때문이라고 한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운전문화 전반에 걸친 빡빡한 제도의 산물에 가까워 보인다. 가령 일본도 1997년엔 음주운전 적발 건수가 34만여건이나 됐다. 잇단 음주운전 참사를 계기로 형량을 높이고 동승·방조자 처벌까지 하고 나선 끝에 지난해 2만1285건으로 줄었다. 인구 대비 한국(2024년 11만8874건)의 약 14분의 1이다.
면허 취득도 까다롭다. 교습소를 다니지 않은 사람의 합격률은 5∼10%에 불과하다. 교습소를 거치면 합격률은 70%대로 높아지는데, 학과 26시간·기능 34시간 교육이 필수다. 학과·기능·도로주행을 합쳐 최소 13시간이면 돼 ‘원숭이도 딴다’는 비아냥을 듣는 한국과 딴판이다.
차량을 소유하려면 주차 공간 확보가 필수다. 도쿄 맨션 세입자의 경우 월세 외에 월 3만엔(약 28만원) 전후의 주차료를 따로 내야 한다. 교통 위반 범칙금도 세고, 주·정차 위반 신고도 활발하다. 그래서인지 도로변을 점거한 차량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일본에서 오래 산 지인은 “현장 경찰관 단속에 걸리면 빼도 박도 못한다”며 “교통 법규를 항상 준수하는 게 마음 편하다”고 충고했다.
한국에선 1일부터 연말연시 음주운전 특별단속을 벌인다고 한다. 솜방망이 수준의 처벌 규정부터 손보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아닌가. 생명과 안전에 관한 규제는 강하면 강할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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