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관계에 심상치 않은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취임 후 처음으로 오는 8일쯤 한국을 방문하려던 일정을 어제 돌연 취소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미국의 내부 사정상 조만간 방한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루비오 장관은 오는 10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는 예정대로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루비오 장관이 방한하면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번째 대면 만남에 관한 조율이 본격화할 것이란 기대가 컸다. 이달 중 개최를 목표로 추진해 온 한·미 정상회담도 연기가 불가피해지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
한·미 간에는 관세를 비롯해 여러 복잡한 현안이 산적해 있다. 그제 트럼프 행정부는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베트남과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반면 한국과의 협상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현재 2만8500명인 주한미군의 규모와 임무에 변화가 생길 것이란 예상이 많으나 미국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루비오 장관은 물론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 또한 방한을 서두르지 않는 모습이다. 중동 및 우크라이나에서의 분쟁에 밀려 한반도 문제가 미국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 아닌지 염려스럽다.
미국 공화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 43명은 최근 트럼프 행정부에 보낸 서한에서 “한국의 디지털 분야 비관세 장벽을 철폐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온라인 플랫폼 규제 강화를 지목해 “미국 기업들에 노골적으로 불리하고 차별적”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들의 주장이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집권당 의원들이 자국 기업의 이익을 위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한·미 간에 진행 중인 관세 협상에서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 와중에 중국은 오는 9월3일 제2차 세계대전 전승절 기념행사에 이 대통령을 초청할 뜻을 밝혔다. 2015년 70주년 전승절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과 나란히 서서 대규모 열병식을 참관한 뒤 미국 등 우방과 갈등을 빚은 일이 떠오른다. 새 정부가 미·중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겠다며 표방한 이른바 ‘실용외교’가 시험대에 오른 모양새다. 외교·안보 당국은 우리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되 동맹인 미국에 잘못된 시그널을 보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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