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정보 퍼뜨리는 서구사회
산업 탈탄소 압박 받는 한국은
재생에너지 잠재력 키워나가야
영화는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한다. 장의차 앞 백파이프의 구슬픈 연주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공동묘지에 내려앉고, 카메라는 암담한 표정의 조문객들로 앵글을 옮긴다. 이어지는 추도사.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소중한 이에게 조의를 표합니다. 둘도 없는 벗이자 영감의 원천이던 그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추도객들이 차례차례 헌화하는 그곳에 놓인 건 관도, 묘비도 아닌 전기자동차.
다큐멘터리 ‘전기자동차를 누가 죽였나?’(2006)는 1990년대 초 환경오염 해결사로 등장한 전기차 EV1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이유를 추적하는 영화다. 영화는 다양한 요인을 ‘용의 선상’에 올리는데,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다’는 내연기관차의 논리도 그중 하나다. 전기차는 불편해서 소비자가 원치 않으며 무리하게 전기차 확대정책을 펴는 건 소비자 권리를 침해하는 위헌 행위라는 것이다. 자동차 업체는 막강한 로비력을 앞세워 결국 내연기관차 연비 규제를 막는 데 성공한다. 이에 대해 영화는 “수요가 없었다는 건 사실이 아니며, 판매 대신 리스 전용으로 제한해 전기차의 시장 확대를 차단하고 수요를 억눌렀다”고 지적한다. 요컨대 전기차를 죽인 건 차 업계의 ‘가짜뉴스’였다는 것이다.

지난달 마지막 주 (사)넥스트와 한국기자협회가 주관한 ‘2025 언론인 해상풍력’ 연수차 영국에 다녀왔다. 첫 프로그램을 진행한 기후·에너지 커뮤니케이션 비영리단체인 ECIU는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치른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기후변화를 믿지 않는 사람들과 이를 부추기고 퍼 나르는 세력들, 기후부정론에 맞서 싸워온 이야기 등등….
지루했다. 수없이 들어온 레퍼토리인 데다 한국은 기후부정론으로 홍역을 치른 경험이 없기에 ‘왜 이런 이야기를 여기까지 와서 또 들어야 하나’ 싶어서 할 수만 있다면 ‘건너뛰기’ 버튼을 누르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도대체 이들은 왜 이렇게까지 가짜뉴스에 집착하는 걸까?”
서구사회에서 기후부정론은 막강한 세력으로 존재한다. 기후변화를 처음 일으킨 곳도 유럽이지만, 해결에 나선 것도 유럽이기 때문이다.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되면서 서구에서는 법적 구속력 있는 감축 의무가 논의되기 시작했고, 이는 곧바로 오일메이저 같은 화석연료 산업의 이해관계와 충돌했다. 이들은 보호막이 절실했다. ‘기후과학은 불확실로 가득 차 있으며, 기후대응은 규제이자 자유 침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줄 싱크탱크, 언론과 결합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수고스럽게 기후변화를 부정할 이유가 없었다. 2000년대 말에야 온실가스 감축이 국가 차원에서 논의됐고, 그것도 얼마 안 가 흐지부지됐다. 한국의 기후대응 역사는 길게 잡아야 5년 남짓이다. 한국에 기후부정론이 뿌리내리지 못한 건 구태여 그 씨를 뿌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한국은 기후변화에 있어 가짜뉴스 청정지대일까.
잠깐 다시 다큐멘터리 이야기로 돌아와서, 영화는 청정 운송수단을 열거하며 수소차는 100만달러나 되고, 차에 충분한 연료를 실을 공간이 없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현실화하기 어려울 거라 말한다. 신생업체인 테슬라는 마무리 내레이션의 배경화면으로 스치듯 지나간다. 영화가 나온 2006년엔 그랬다.
새 기술과 산업은 기득권의 저항을 마주하기에 십상이며 이때 의도적인 역정보와 몰라서 당하는 오정보가 뒤엉켜 확산되기 마련이다. 가짜뉴스와 진짜뉴스의 경계는 대체로 처음엔 흐릿하다 점차 선명해진다.
한국은 기후변화를 대놓고 부정하는 ‘가짜뉴스 시즌1’은 건너뛰었지만, 에너지와 산업 탈탄소 압박이 시작된 지금은 보다 교묘한 ‘가짜뉴스 시즌2’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제조업 위주의 한국에서 재생에너지는 안 된다거나 한국 기상여건엔 안 맞는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새 에너지원을 기회가 아닌 낯선 침입자로만 바라봐서 생기는 오해다. 가짜뉴스를 판독하는 게 언론의 주요 역할이라면 에너지 전환은 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며, 다행히 우리에겐 재생에너지 잠재량과 잠재력 모두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다양한 서사로 담아내야 한다. 우리는 이제 막 가짜뉴스 전쟁의 서막에 들어섰다.
윤지로 사단법인 넥스트 수석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