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4세 교황께 제가 그간의 남·북 관계에 대해 설명을 드렸습니다. 잘 들으셨으니 마음속에 새기셨다고 믿습니다. 레오 14세 교황이 남·북을 위해 큰일을 하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은 3일 서울 광진구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교황님이 처음 되셨을 때 제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이분이 남북을 위해 큰일을 하실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조용히 계시지만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하실 것이라 믿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가톨릭 최대 규모 행사인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에 북한 청년이 참석할 수 있는지에 대해 유 추기경은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상대가 있는 일이다. 대화할 때는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고 한 걸음씩 나아가려 노력해야지 우리 생각만으로 불쑥 이야기하는 건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대화를 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며 요란스럽지 않게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을 가톨릭에서 일컫는 ‘누룩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유 추기경은 이재명 대통령과 교황이 올해 중 만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과 취임 후 레오 14세에게 보낸 두 번의 서한을 모두 자신이 전달했다며 “(교황은)편지를 받고 매우 좋아하셨다. 교황청과 한국, 특히 새 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유 추기경은 “우리 대통령께 가능하면 금년 중에 교황청을 방문하셔서 교황을 뵀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드렸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에서 교황청으로 보낸 친서에도 가까운 시일 내에 교황을 찾아뵙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가까운 시일을 금년 정도로 해석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레오 14세가 교황청 주교부 장관으로 재임하던 추기경 시절 유관부서 장관으로 자주 소통했을 뿐 아니라 같은 아파트 위·아래층에 살았다는 유 추기경은 “친한 사이다. 말씀드리자면 그냥 매우 친하다”고 말했다. “내가 자는 침대 아래층 바로 그 자리에서 또 주무시는 건데 승강기에서 자주 만나곤 했다. ‘발을 쿵쿵거려 시끄럽지 않으냐’고 농담을 건네면 괜찮다며 서로 웃곤 했다”고 말했다.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굉장히 진취적이고 도전적이라면, 레오 교황님은 그런 면에서 훨씬 더 조용하시면서 특별히 잘 들으십니다. 이번 콘클라베에서 추기경들은 그분이 ‘미국분’이라는 것보다 ‘선교사’라는 점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페루의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20여년간 선교하셨다는 점이 추기경들로부터 높은 인정을 받아 교황님으로 선출되셨습니다. 굉장히 조용하시고, 대신 잘 들으시는 분입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유 추기경은 많은 외국 추기경이 “당신 집안 괜찮으냐”,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고 물으며 걱정해서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유 추기경은 “총 한 방 쏘지 않고 평화롭게 새 대통령을 뽑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며 한국의 장점을 설명하긴 했지만 부끄러운 마음은 항상 있었다”고 말했다.
진정한 국민 통합을 위해선 대통령을 비롯한 책임자들이 자리를 개인의 이익이나 자손의 미래를 챙기는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며 ‘봉사하는 자세’를 강조했다. “정치인들이 좀 더 대화에 능하고,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서, 정말 사랑을 더 많이 베푸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옥석은 가려야 합니다. 좋은 사람은 키워주고, 나쁜 사람은 조용히 집에 가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를 돕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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