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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식칼럼] 가난한 노인, 가난하지 않은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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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준비 부족한 기존 세대와
베이비붐 세대 교차하는 시기
노인을 하나의 집단으로 보던
복지제도 설계 인식 바뀌어야

현재 노인의 상당수는 일제강점기 말부터 해방과 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태어나 전쟁의 폐허와 절대빈곤 속에서 성장한 산업화 이전 세대다. 가정형편 때문에 제대로 교육받기 어려웠고, 낮은 학력은 이후 취업과 소득에도 영향을 미쳤다.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이른바 ‘공돌이’, ‘공순이’로 불리며 공장과 건설현장에서 값싼 노동력을 제공해 경제성장에 기여했다.

이들은 부모를 부양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으며, 특히 자녀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벌어들인 돈의 상당 부분을 교육비로 썼다. 자녀의 결혼과 주거 마련까지 부모가 책임지는 가족문화도 강했다. 한정된 소득으로 이 모든 것을 감당하면서 자신의 노후를 위한 자산을 충분히 축적하기는 어려웠다.

이삼식 한양대학교 고령사회 연구원 원장
이삼식 한양대학교 고령사회 연구원 원장 

국민연금도 1988년에야 도입되어 산업화 이전 세대 중에는 가입하지 못했거나 가입 기간이 짧은 사람이 많았다. 충분한 자산을 마련하지 못한 데다 연금소득마저 빈약한 상태에서 노동소득이 끊기면서 노후에 빈곤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살아온 시대의 흔적은 지금의 노인빈곤 통계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66세 이상 상대적 빈곤율은 39.7%로 전체 인구의 14.9%보다 크게 높고,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반면 OECD 평균은 66세 이상 14.8%, 전체 인구 11.5%로 차이가 크지 않다. 노인이기 때문에 가난한 것은 아니다. 한국의 높은 노인빈곤은 노후를 충분히 준비하기 어려웠던 세대가 현재 노인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세대효과’다.

이제 그 구도가 달라지고 있다. 베이비붐세대가 노인층으로 본격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부모세대의 교육투자에 힘입어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많았고, 한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에 노동시장에 진입해 소득과 자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은 길어졌고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등 노후 소득원도 다양해졌다.

노인층에서도 세대에 따른 차이는 이미 뚜렷하다. 76세 이상의 상대적 빈곤율은 54.0%인 데 비해 66~75세는 29.8%다. 앞으로 상대적으로 노후 준비가 잘된 베이비붐세대가 노인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 전체 노인빈곤율도 점차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산업화 이전 세대와 베이비붐세대가 노인층에서 교차하는 시기다. 가난한 노인이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가난하지 않은 노인이 빠르게 늘고 있다.

지금까지는 노인을 하나의 집단으로 보고 복지제도를 설계해 왔다. 노인의 대부분이 가난했던 시대에는 65세라는 연령이 복지 대상을 정하는 현실적인 기준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지하철 무임승차나 공공시설 감면처럼 연령만을 기준으로 모든 노인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들이 만들어졌다. 기초연금도 65세 이상 노인의 약 70%를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가난하지 않은 노인이 늘어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충분한 소득과 자산을 가진 노인에게도 연령만을 기준으로 혜택을 제공하고 그 비용을 젊은 세대가 계속 부담한다면 세대 간 형평성 문제가 커질 수 있다. 더욱이 베이비붐세대는 인구 규모가 크다. 이들이 대거 노인층에 진입하면 연령만을 기준으로 한 복지에 필요한 재정도 크게 늘어나 제도의 지속가능성에 부담을 줄 수 있다.

그렇다고 노인복지를 일률적으로 줄이거나 보편적 복지를 선별적 복지로 바꾸자는 것은 아니다. 소득 보장이 목적이라면 소득·자산 수준에 따라 지원의 대상과 수준을 보다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돌봄, 의료, 주거 등이 목적이라면 소득·자산뿐 아니라 건강 상태, 돌봄 필요 정도, 주거 여건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노인도 변하고 있다. 모든 노인이 부유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노인의 삶이 ‘보편적인 가난’에서 벗어나 다양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노인을 바라보는 인식도, 노인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제도도 이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아야 할 원칙이 있다. 노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인을 나이로 묶어 하나의 집단으로 다루던 복지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서로 다른 삶을 바라보는 복지로 바뀌어야 한다.

 

이삼식 한양대학교 고령사회 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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