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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신이 아닙니다”…‘고객 갑질’에 칼 빼든 일본 [재패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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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유태영 특파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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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부문 2명 중 1명 꼴 피해
10월부터 고객 갑질 대책 의무화

JR동일본 “악질 고객 상대 않겠다”
‘손님은 신’→직원 보호 중심 변화

일본에서는 ‘○○하라’라는 단어가 자주 쓰입니다. 괴롭힘을 뜻하는 영어 하라스먼트(Harassment)와의 합성어인데요. 가령 직장 내 갑질은 ‘파와하라’(Power+Harassment), 성희롱은 ‘세쿠하라’(Sexual Harassment)라고 부릅니다. 얼마 전 요미우리신문에는 PC 자판을 거칠게 치거나 한숨, 혀차는 소리가 큰 것은 직장 내 ‘오토하라’(音·오토+Harassment)가 될 수 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이른바 ‘고객 갑질’, 즉 카스하라(Customer Harassment)가 화두가 됐습니다. 2026회계연도(2026년 4월∼2027년 3월)의 하반기가 시작된 10월1일부터 기업의 ‘카스하라 방지 조치’가 의무화됐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10월1일부터 각 기업의 ‘고객 갑질’ 방지 대책 실시가 의무화됐다. 일본에서는 최근 고객의 폭언·폭행, 부당하고 반복된 요구, 바닥에 엎드려 사죄할 것을 강요하는 행위 등이 사회 문제가 돼 왔다. 인공지능(AI) 플랫폼 ‘세계온(SEGYE.On)’으로 생성한 이미지.
일본에서 10월1일부터 각 기업의 ‘고객 갑질’ 방지 대책 실시가 의무화됐다. 일본에서는 최근 고객의 폭언·폭행, 부당하고 반복된 요구, 바닥에 엎드려 사죄할 것을 강요하는 행위 등이 사회 문제가 돼 왔다. 인공지능(AI) 플랫폼 ‘세계온(SEGYE.On)’으로 생성한 이미지.

◆고객으로부터 ‘도게자’ 요구까지…서비스업 특히 심각

일본은 최근 금융·외식·의료 등 고객 응대가 많은 업종을 중심으로 고객의 폭언·폭행, 부당한 요구, 반복적이고 집요한 언행 등 피해가 확산하자 노동시책종합추진법을 개정한 바 있습니다. 이 법이 10월1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각 기업은 직원 보호 방침을 정하고 상담 창구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도대체 고객 갑질이 얼마나 심하기에 대책 마련을 법제화하기에 이르렀을까요.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한 농기계 회사의 도치기현 영업소 소장이었던 남성은 2006년 거래처와 자재 납품 문제로 갈등이 빚어져 이른바 ‘도게자’(土下座·바닥에 엎드려 조아림)를 강요받은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회사 쪽에 상담을 했지만 “경찰서까지 가게 되면 네 미래는 없다”, “알아서 해결하라”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고 하네요. 이 일로 우울증을 앓게 된 남성은 휴직 후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증상이 회복되지 않았고, 이후 다른 질병이 겹쳐 2024년 사망했습니다. 이 남성의 부인(70)은 최근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숙박업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갑질을 방지하기 위한 일본의 캠페인 그림. 일본 정부 홍보 사이트 캡처
숙박업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갑질을 방지하기 위한 일본의 캠페인 그림. 일본 정부 홍보 사이트 캡처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피해는 특히 심각합니다. 일본 최대 산별 노조인 UA젠센 유통·종합서비스 부문은 2024년 1∼3월 고객 갑질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요, 응답자(3만3133명)의 46.8%가 ‘최근 2년 이내에 갑질 피해를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나마 이 문제에 관한 노사 협력, 여론 환기 등이 이어짐에 따라 2020년 56.7%에서 줄어든 수치였습니다.

 

피해 경험이 있는 응답자들은 ‘가장 인상에 남은 고객 갑질 유형’으로 ‘폭언’(39.8%), ‘위협·협박’(14.7%), ‘몇번이나 같은 요구를 반복하는 행위’(13.8%), ‘장시간 눌러앉기’(11.1%), ‘권위적 태도나 훈계’(10.2%) 등을 꼽았습니다.

 

◆“잡아넣을 테니 각오해”…3년간 641차례 민원도

 

기업이 아닌 공무원 사회의 문제이긴 하지만, 최근 오사카시가 법적 대응 방침을 굳힌 악성 민원인 사례도 고객 갑질의 심각성을 잘 보여줍니다.

 

오사카시에 거주하는 한 남성은 시립수영장의 설비 결함 등을 문제 삼아 여러 시청 부서를 상대로 사과와 상세한 설명을 요구했는데요, 시청 측이 기록을 시작한 2023년 5월부터 올해 6월까지 시청 직원들은 전화로 548차례, 직접 면담으로 93차례 이 남성을 응대해야 했다고 합니다. 

 

일본 도쿄 신주쿠구립중앙도서관에 고객 갑질 4대 유형을 소개한 포스터, 어떠한 종류의 괴롭힘도 괴롭힘을 묵과하는 행위도 용인될 수 없다는 신주쿠 구청장의 ‘괴롭힘 방지 선언’이 나란히 붙어 있다. 도쿄=유태영 특파원
일본 도쿄 신주쿠구립중앙도서관에 고객 갑질 4대 유형을 소개한 포스터, 어떠한 종류의 괴롭힘도 괴롭힘을 묵과하는 행위도 용인될 수 없다는 신주쿠 구청장의 ‘괴롭힘 방지 선언’이 나란히 붙어 있다. 도쿄=유태영 특파원

특히 이 남성은 전화 통화나 면담 과정에서 공무원들에게 “빌어먹을”, “일을 그만둬라”, “잡아넣을 테니 각오하라” 등 폭언도 퍼부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사카시는 이 남성을 대응하는 데 들어간 시간의 인건비에 해당하는 40만엔(약 350만원)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오는 10월 정식으로 제기할 방침입니다.

 

오사카부가 지난 6월25일∼7월9일 직원 1만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6007명 중 23%(1365명)이 ‘카스하라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빈도는 ‘1년에 몇 번 정도’가 64%, ‘한 달에 몇 번 정도’가 18%, ‘일주일에 몇 번 정도’가 4%였고, ‘거의 매일’도 1% 있었습니다. 이들 중 50%가량은 악성 민원인을 한 번 상대하는 데 ‘1시간 이상’ 시간이 소요됐다고 답했고, ‘스트레스나 불안을 느꼈다’(80%)거나 ‘일을 그만두고 싶어졌다’(16%)는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일본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는 티셔츠. 왼쪽 흰색 긴팔 티셔츠에는 ‘손님은 신입니다’, 오른쪽 검은색 반팔 티셔츠에는 ‘손님은 신이 아닙니다’라고 적혀 있다. 일본 온라인몰 캡처
일본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는 티셔츠. 왼쪽 흰색 긴팔 티셔츠에는 ‘손님은 신입니다’, 오른쪽 검은색 반팔 티셔츠에는 ‘손님은 신이 아닙니다’라고 적혀 있다. 일본 온라인몰 캡처

◆“손님은 신” 문화에 변화 감지

 

가수 미나미 하루오는 1961년 지방 공연 당시 사회자로부터 ‘손님(관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손님은 신”이라고 답한 적이 있습니다.

 

신 앞에서 기도하듯 잡념 없이 관객 앞에서 노래하겠다는 자세를 나타낸 말이었지만, 이후 ‘고객은 절대적 존재’라는 의미로 확대돼 사용됐습니다. 손님을 극진히 환대하는 오모테나시와 함께 일본의 접객 문화를 상징하는 문구가 된 것이죠.

 

아울러 일본 호텔이나 식당, 카페 등에서는 손님에게 극존칭을 쓰고, 서비스 제공자는 스스로를 낮추는 언어 관습이 있는데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고객 우위’ 문화가 고객 갑질의 배경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곤 합니다.

 

기리우 마사유키 도요대 교수(심리학)는 고객 갑질 관련 강연에 참석한 이들에게서 회사 측 대응에도 불만이 크다는 인상을 받았다면서 “많은 경영진이 ‘조금 곤란한 고객에게도 잘 대응할 수 있어야 진정한 한 명 몫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통념처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손님은 신’이라는 과도한 오모테나시 문화와 이를 당연시하는 소비자 사이의 균형이 깨진 것이 고객 갑질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꼬집은 바 있습니다.

 

이제 이런 문화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아키타현의 다이이치 관광버스는 2023년 지역신문에 게재한 ‘그 불만, 지나친 것 아닙니까?’라는 지면 광고에서 “최근 몇 년간 사소한 일로 불합리한 클레임을 넣거나 과도한 요구를 하는 고객들이 있다”면서 “손님은 신이 아닙니다”라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호텔이나 료칸(旅館) 등 숙박시설에서는 이미 2023년 여관업법 개정을 통해 부당한 숙박료 할인이나 무료 업그레이드, 레이트 체크아웃 등 계약에 없는 서비스를 반복적으로 요구하는 고객의 숙박을 거부할 수 있게 됐습니다.

 

JR규슈 오이타역에 설치된 고객 갑질 방지 캠페인 포스터. TBS 방송화면 캡처
JR규슈 오이타역에 설치된 고객 갑질 방지 캠페인 포스터. TBS 방송화면 캡처

철도회사인 JR동일본도 2024년 고객 갑질 대응 원칙을 상당히 강한 수준으로 명문화했습니다. 폭언·폭행·협박이나 집요하게 반복되는 요구, 도게자 요구, 퇴거 거부·눌러앉기, 직원 개인에 대한 공격 등을 고객 갑질이라고 명시하고 “카스하라를 저지른 고객에게는 대응하지 않겠다. 악질적인 경우 경찰·변호사 등과 상담해 엄정 대응하겠다”고 선언한 것이죠. JR동일본은 고객 갑질이 “직원의 존엄을 해치고 직장 환경의 악화를 초래함으로써 고객들에게 안전하고 품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고 봤습니다.

 

10월1일 ‘카스하라 대책’ 시행이 의무화하면서 이제 일본 기업들은 ‘더 친절하게’가 아니라 ‘어디까지 친절할 수 있는가’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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