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계·격노 자주하면 공직사회 사기 저하 불러
최고지도자가 크고 작은 일들을 일일이 직접 챙기는 ‘만기친람(萬機親覽)형 리더십’은 좋은 리더십일까, 아닐까? 이재명 대통령이 새해 업무보고 과정에서 ‘의외의 것’들을 콕콕 집어내 지적하고 야단치는 모습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만기친람형’이라는 걸 인정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리더십이 지닌 장단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향후 국정운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에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재선 국회의원, 당대표를 단계적으로 밟아온 ‘전천후 리베로’ ‘올 라운드 플레이어’다. 이런 지도자들의 공통점은 ‘디테일’에 강하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디테일에 강한 이 대통령이 12월 내내 19개 부처를 포함한 228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새해 업무보고에서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작은 것’을 짚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전략적이라고 본다. 예컨대, ‘환단고기’ ‘책갈피 속 외화 밀반출’ ‘수입콩’ 같은 작지만 날카로운 ‘송곳 질의’와 따끔한 질책 등을 통해 온 국민과 공직사회를 향해 현장 스킨십과 민생 챙기기, 역사 논쟁, 공직기강 확립, 나아가 국정 장악력 강화 효과를 기대했다고 본다. 조용하고 존재감 없는 업무보고보다는 좀 요란하더라도 존재감 뚜렷한 업무보고가 실보다 득이 훨씬 많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원래 ‘만기친람’은 임금이 모든 정사를 직접 보살피는 통치 방식이라는 좋은 의미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챙기는 독단적인 리더십’으로 치부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성공한 정치지도자들 가운데는 만기친람형이 많다. 정치·경제·사회·외교안보의 모든 분야가 긴밀하게 연결된 융합시대에 다방면에 걸친 능력과 열정이 없으면 국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기 힘들다. 박정희·김대중 대통령이 그랬고, 루스벨트, 트럼프, 시진핑, 푸틴 같은 통치자들도 하나에서 열까지 챙기는 스타일이다. 반대로 만기친람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즉 디테일에 약해서 국정운영에 큰 구멍이 뚫려 낭패를 본 인물로 김영삼·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꼽히기도 한다.
흔히 분권화되고 민주화된 현대사회에서는 권한위임형 리더십이 좋다고 말하지만, 이는 자유방임형 리더십이나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리더십으로 빗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정치든 행정부든 기업이든 만기친람하는 리더들이 빠른 판단력과 추진력, 강한 책임감, 일하는 지도자, 현장 실무형 리더십, 위계보다 능력 중시라는 측면에서 유리한 점이 많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이 대통령처럼 만기친람형 지도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자칫 독선적인 리더십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실력이 있고, 자신감이 넘쳐서 혼자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자만에 빠질 수 있다. 만기친람은 서구적 표현으로 ‘Centralization’(중앙집권)이나 ‘One-man show’(원맨쇼)로 해석되기도 하고, 그런 지도자들은 대체로 스트롱맨인 경우가 많다.
이번 업무보고에 대해 보수적인 언론·정당들이 ‘직장 내 갑질 같다’고 비판한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진보적인 언론들조차 ‘호통치고 면박 주는 대통령’의 모습에 우려를 표시했다. 행여라도 대통령의 심중에 사법개혁이나 검경 수사 같은 민감한 이슈에 대해 구체적으로 조언하거나 관여하고 싶은 유혹이 있다면, 자제하고 삼가야 한다. 또 하나, 디테일은 지엽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에 강해야 한다.
예컨대, 이 대통령이 “환빠 아느냐”며 지엽적인 환단고기 얘기를 끄집어냈으니, 마지막에 “역사에는 여러 가지 관점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꺼낸 말이었다”고 본질적인 마무리 발언을 해야 했다. 앞으로 이 대통령이 사소한 것을 언급하고 나서 본질적인 맺음말을 한다면, 국민은 ‘대통령이 작은 것을 통해 큰 것을 보는 국가지도자’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이 대통령처럼 다방면에 밝은 사람은 시시비비에 밝아서 신상필벌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번 업무보고 때도 생방송으로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직자들이 질책당하는 장면들이 있었다. 만기친람형 지도자들이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칭찬 대 지적의 비율을 7대 3 정도로 하는 것인데, 실제로는 반대인 경우가 많다. 리더가 훈계를 자주 하거나 격노하면, 부하들이 사기 저하, 보신주의, 무사안일주의에 빠진다는 것은 리더십 이론의 ABC다. 하나 더 추가하면, 최고지도자가 너무 많은 일을 하면, 업무적 과부하는 물론 자신도 모르게 육체적·심리적 과부하에 걸린다는 점을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만기친람형 리더십의 장점인 다재다능함과 열정을 계속 발휘해나가되, 디테일에서 선택과 집중, 강약 템포 조절을 잘 해나가기 바란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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