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자체당 2.7억 지원 미미
5394명 전담인력 채울지 미지수
전형적인 희망 고문 냉소만 나와
#1. 나는 객사할 촌로
나는 지금 서울의 한 요양병원 집중치료병동에 누워 있다. 그나마 희멀건 죽을 스스로 떠먹은 게 보름 전쯤이다. 이젠 콧줄로 수액과 영양제를 맞는다. 한번 헤집어보고 싶은 머릿속은 더 엉켜 있다. 내가 지금 어디에 누워 있는지 모르겠다. 간혹 얼굴을 비치는 자식들 나이는커녕 이름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런데도 하얗게 헐었다는 입안과 퉁퉁 부어오른 팔다리, 엉덩이 한가운데 욕창의 고통은 왜 이리 뚜렷한지. 정신이 맑아질 때마다 면회 온 자식에게 ‘이렇게 살아 뭐하겠니. 농약 살 돈 좀 놓고 가라’고 애원하는 이유다.
내가 장수 시골집을 떠나 병원을 전전한 지 1년2개월째다. 작년 10월 말 여동생이 시골에 찾아와 같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일어서는 데 갑작스러운 어지럼증으로 잠깐 휘청였더랬다. 이내 정신을 차린 뒤 집에서 잠시 몸을 뉘었다 싶었는데 눈을 떠보니 전주 병원 응급실이었다. 나중에 들은 병명은 뇌경색에 따른 왼쪽 팔다리 마비. 늘그막에 갑갑한 병실에 있어선가, 어김없이 섬망이 찾아왔다. 기저귀 채운 것도 모르고 몇 번 멀쩡한 손을 집어넣어 똥칠갑을 했나 보다. 질겁한 간호간병통합병동 간호사들 권유로 인근 재활병원으로 옮겼고 생전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내 옆을 지키기 시작했다.
#2. 내 이름은 양영자
솔직히 ‘아버지를 전주 재활병원 대신 서울 요양병원으로 모시자’는 자식들 제안에 선뜻 동의한 것은 돈 문제가 컸다. 재활병원에선 간병비만 하루 12만∼25만원이 들었다. 큰아들로부터 보름간 병원비가 300만원에 달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그런데 요양병원비는 서울임에도 한 달에 130만원이 채 안 된다 했다.
정년퇴직을 1년 앞두고 간병휴직을 낸 뒤 한 달이나 아비 수발을 든 큰딸에 대한 안쓰러움과 병원 근처에 사는 아들들이 자주 들여다보면 남편 상태가 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무엇보다 5m도 걷기 힘들 정도로 이 몸 하나 건사 못하는데 남편 병수발은 언감생심이라는 현실이 컸다. 서울 병원에서 꾸준히 치료받고 자식들 얼굴 자주 보면 남편이 몇 달 내 자리 털고 일어나 다시 집으로 올 것 같았다.
지금은, 뼈저리게 후회한다. 요양병원에 가기 전 마비된 손·발가락을 조금이나마 꼼지락거렸던 남편 몸은 이제 앙상하고 딱딱하게 굳다 못해 뒤틀려버린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의사는 하루 한 번 침 놓는 게 치료의 전부인 듯하고, 간호사들은 ‘아버님이 고함을 하도 질러 다른 환자들이 못 잔다’며 수면제 투약할 때만 전화하고, 한 달이 멀다 하고 바뀌는 간병인은 낙상을 핑계로 그나마 성한 오른팔을 병상에 꽁꽁 묶어놓기 일쑤다.
얼마 전 막내아들이 “아버지가 그렇게 보고 싶어하는 양영자씨” 하며 바꿔 준 영상통화 너머 남편 눈빛은 왜 이리 휑하던지. 쓰러지기 전 ‘벽에 똥칠하더라도 절대 요양원 같은 데는 가지 말자’는 남편과의 다짐이 맴돌아 나는 오늘도 가슴을 쥐어뜯으며 밤을 지새운다.
#3. 나? 무력한 자식
이재명정부가 지난 9월 발표한 국정과제에는 80대 중후반 중·경증 환자를 부모로 둔 기자에게 솔깃한 공약들이 많았다. 임기 내 노인 중증환자의 간병비 본인부담률을 30%로 줄이고 내년 3월 말 시행하는 의료·요양·돌봄 통합 서비스를 안착시켜 경증환자가 살던 곳에서 존엄한 삶을 누리도록 하겠다는 공약이 그랬다.
하지만 지난 1년여간의 경험은 ‘전형적인 희망 고문’이라는 냉소를 짓게 만든다. 사실 울분이 치솟는 요양병원 의사의 무기력과 간호사들의 권태, 조선족 간병인들의 무례는 그들의 개인적 성정 때문이 아니다. 노인돌봄 책임을 가족·여성에게 떠넘기며 최소한의 재정만 투입해온 국가가 초래한 구조적 문제라는 생각이다.
통합돌봄도 마찬가지다. 모든 읍·면·동이 사회복지사나 요양보호사 등 전담인력(5394명)을 채울 수 있을지는 차치하자. 전국 229개 지자체당 2억7000만원만 지원하면서 ‘가족 중심 돌봄에서 돌봄 국가책임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공언하기에는 너무 민망한 예산(914억원) 아닌가. 차라리 애초안대로 재정자립도 하위 80% 지자체에만 집중했다면 내년 지방선거용이라는 오해는 받지 않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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