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없어 ‘그냥 쉼’ 청년 50만
정부가 서민 주거 사다리 걷어차
실수요자 규제 풀어 숨통 터줘야
최근 종영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는 중·장년층의 현실을 실감 나게 묘사해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다. 50대 직장인 삶의 무게와 고뇌를 현실감 있게 응축했고, 자신이 소중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잃고서야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힐링 드라마로 마무리됐다. 53세에 통신 대기업을 퇴직한 ‘인간 김낙수’의 삶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하지만 드라마 제목에 담긴 사회적 함의는 묵직하다.
무엇보다 ‘서울’ ‘자가’로 대변되는 부동산은 드라마를 지탱하는 큰 축이다. 아내의 결심에 등 떠밀려 평생에 걸쳐 대출금을 갚고 있지만 ‘서울 자가 보유’는 그 자체가 자부심이다. 임원 승진이 ‘99% 확정’이라고 자신하던 김 부장이 좌천 끝에 희망퇴직을 하면서 펼쳐지는 대리운전, 세차사업 등 ‘인생 2막’의 여정에서 집은 그가 마지막까지 부여잡고 싶었던 동아줄이었다. 김 부장의 아내가 큰 맘 먹고 산 고가의 로봇청소기는 구축 아파트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새로 지은 아파트로 갈아타고 싶은 일반인의 욕망을 슬쩍 내비쳤다는 평가다. 여하튼 김 부장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우리 사회의 성공 방정식으로 통하는 ‘집’과 ‘직장’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갖춘 나름 괜찮은(?) 인생을 살았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주변으로 눈을 돌리면 현실은 냉혹하다. 우리 사회의 청년층에겐 ‘서울 자가’는 언감생심이다. ‘이번 생엔 내 집 마련은 어렵다’는 ‘이생망집’이라는 체념이 터져 나온 지 오래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공개한 ‘2024년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을 하기 위해서는 월급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14년을 모아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숨만 쉬고 돈을 모으라는 것과 진배없다. 이마저도 김 부장처럼 안정된 직장이 있어 월급을 받아야 가능한 얘기다. 노동 시장 문턱은 청년에게 더 높아졌다. 대기업들의 공채 폐지·경력 위주 수시채용 추세와 노동 경직성 탓에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임금 삭감 없는 법정 정년연장’을 고집하는 노동계 눈에는 ‘그냥 쉼’ 청년 50만명이라는 숫자가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이런데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산으로 가고 있다. 시장과 현실을 외면한 것부터가 문제다. 실제 “집값을 잡겠다”며 이재명정부가 3차례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백약이 무효다.
6·27 가계대출 관리 방안과 9·7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이 듣지 않자 내놓은 10·15 주택 시장 안정화 대책은 초유의 규제를 담았지만 허사였다.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을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로 묶고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수도권 규제지역 내 15억원 초과 주택의 주택담보대출 한도는 6억원에서 2억∼4억원으로 축소했고, 이주비 대출도 막았다. 서울 주택공급의 핵심 역할을 해온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조합원 지위 양도 등 거래마저 규제로 묶었다.
시장은 정부 기대를 비웃듯 움직였다. 토허구역 확대 지정으로 가격을 낮춘 아파트 매물이 쏟아지고 시세도 내릴 줄 알았는데 정반대다. 오히려 강남 등 주요 아파트 단지엔 매물이 씨가 말랐다. 정부가 ‘똘똘한 한 채’라고 좌표를 찍어준 꼴이 됐다. 이뿐인가. 서울 전역이 토허구역으로 갭투자(전세 낀 아파트 매매)가 막히자 전세 매물이 자취를 감췄다. ‘부르는 게 값’이다. 지난달 25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평균 거래 금액은 6억3683만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3.7% 올랐다. 전세의 월세화만 빨라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서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146만원으로 2015년 7월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투기세력을 겨냥한 규제가 서민의 주거 사다리만 걷어찬 꼴이다. 대출 규제가 강해지니 실수요자들은 거래를 포기하고, 매도자는 세금 부담에 발을 뺀다. 김 부장 같은 1주택자는 갈아타기도 막혔다. 거래가 줄면 시장은 멈춘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실수요자의 숨통을 틔워 부동산 시장이 물 흐르도록 해야 한다. 언제까지 “15억원 아파트는 서민 아파트” “집값 떨어지면 사라”는 말로 서민 가슴을 후벼 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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