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제국 황제는 외국과의 밀약이나 속주(屬州) 관리를 위해 ‘레가투스’(legatus)를 파견했다. ‘대사’ 또는 ‘위임된 사람’이라는 뜻으로 명목상 외교관이었지만, 실제로는 황제의 의중을 직접 전달하는 특사였다. 중세 유럽에서도 각국 군주가 특사를 자주 활용했다. 이들은 공식 외교 루트를 건너뛰고 직접 군주와 접촉한 탓에 위세가 남달랐다. 조선 시대 왕의 비밀 지시를 받고 외교 협상이나 군사동맹을 추진했던 밀사(密使)도 이와 유사하다.
냉전 시대(1947~1991)에는 비공식 실세 특사의 역할이 훨씬 중요했다. 미국의 헨리 키신저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비공식 안보특사로 중국과의 비밀 협상을 주도해 미·중 수교의 길을 열었다. 구 소련 외교관 출신인 아나톨리 도브리닌도 쿠바 위기와 미·소 간 핵 협상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특사로 꼽힌다. 같은 시대를 살다간 김종필, 이후락, 박동선은 박정희 정권 시절 대통령의 비공식 대리인 역할을 수행했다.
냉전 이후에도 특사 외교는 여전히 실세 중심으로 운영됐다. 2000년대 초 부시 미국 행정부의 중동 특사로, 석유·전쟁 관련 핵심 조정 역할을 수행한 제임스 베이커 미국 전 국무장관이나 2010년대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북·미 실무협상을 총괄한 스티븐 비건 미 대북특별대표가 대표적이다.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주요 무기 협상을 담당한 키스 캘로그는 방산 특사로 주목받았다. 이처럼 오늘날 실세 특사는 국가안보와 방산을 겸한 전략 외교관 성격을 띠고 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번 주 대통령 특사로 중동 방산 수출 핵심국인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한다. 과거에도 전례는 있다. 문재인정부 때 임종석, 윤석열정부 때 김대기 비서실장도 UAE를 다녀왔다. 일회성에 가까웠다. 반면 강 실장은 지난달 17일 방산뿐 아니라 경제 협력, 문화 교류 등 포괄적 협력을 담당하는 전략경제협력특사로까지 임명됐다. 그리고는 폴란드·루마니아·노르웨이를 방문, K방산 외교에 나섰다.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이례적 행보라는 얘기도 흘러 나온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한 자리다. 비서실장 본업은 누가 챙기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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