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통장·개인정보 팔러 와
中조직에 납치·감금·사망 일상
“말 안 들으면 마약 투약시켜
갈 곳 없어 대사관 앞 서성거려
최근 도움 요청 10~15건 달해”
한국 정부 안일한 대응에 일침
“3년 전부터 코리안데스크 설치 요구… 진전 없어”
캄보디아로 떠난 한국인이 납치·감금되는 사례가 잇따르는 가운데 현지에서 23년을 지낸 김대윤 재캄보디아 한인회 부회장은 최근 3년간 이 같은 문제가 재차 불거졌지만 정부가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다며 사건의 심각성을 전했다. 고액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캄보디아에 온 청년들이 중국인 조직에 의해 감금되고 구타당하는 상황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김 부회장은 14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중국인들이 말 안 듣는 한국인에게 마약을 투약해 약물 과다로 사망하게 하는 방식을 쓴다”며 “현지 경찰은 약물 과다를 사인으로 처리하면서 관련 보도조차 안 나오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중국인이) 총 겨누는 건 아무것도 아니고 여러 명이 강제로 제압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일도 캄보디아에서 비일비재하다”고 꼬집었다.
캄보디아에서 감금 피해를 당하는 청년 대부분은 자신의 통장이나 개인정보를 팔기 위해 찾아온 이들이라고 한다. 보이스피싱, 마약 등 범죄에 활용되는 대포통장 명의자로 이용되는 것이다. 김 부회장은 “통장을 팔러 왔는데 비밀번호만 받고 보내주면 한국에 돌아가 비밀번호를 바꾸거나 경찰 신고를 할 수도 있으니 감금해놓고 강제노역을 시키는 것”이라며 “통장 10개를 가져오면 1500만원을 준다고 꾀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내 범죄조직은 수십 개가 존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직 ‘윗선’인 중국인들은 수천 명씩 단지를 구성해 생활하고 있고, 한국인은 5~20명 단위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일부 현지 언론은 한국인 온라인 사기 조직의 수가 2000명으로 추산된다고 보도했다. 한국 조직이 한국인들을 취업사기 형태로 모집하고 그들의 통장이 막히면서 쓸모가 없어지면 중국 조직에 이들을 팔아 강제노역 시키는 형식으로 범죄가 이뤄지고 있다고 김 부회장은 전했다.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은 운 좋게 조직을 탈출한 한국인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돈과 여권을 잃은 이들이 갈 곳이 없어 대사관 주변만 서성이고 있지만 대사관은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김 부회장은 “대사관 앞에 가면 반바지, 속옷 차림으로 와서 서성이는 청년들이 있다”며 “교민들이 그들을 볼 때면 ‘범죄단지에서 탈출해 또 왔구나’ 생각할 정도”라고 전했다.
교민 차원에서 범죄단지를 탈출한 한국인의 비행기값과 여권 재발급 비용 등을 일부 지원해주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김 부회장은 “한 명당 비행기값 등을 따지면 100만원이 넘게 들어가지만 개인적으로 도와주는 사람도 많다”며 “최근 몇 개월 사이 (한인회로 접수되는) 도움 요청이 엄청 늘었다”고 전했다. 그는 “예전엔 하루 1건 정도였는데 최근 일주일 사이 10~15건이 접수될 정도로 늘었다”고 한탄했다.
한국인 피해가 최근 몇 년새 수차례 언론 등을 통해 조명됐지만 정부 대응은 미흡했다.
교민회는 3년 전부터 현지 경찰 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요구해왔는데 진전이 없었다고 했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수사기관 차원에서 다뤄지지 않고 있다 보니 캄보디아는 사실상 ‘무법지대’와 다름없었다. 김 부회장은 “(한국 정부는) 캄보디아 정부가 반대한다고 설명하는데 그건 핑계라고 생각한다”며 “최선을 다하지 않고 외면하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캄보디아 실태가 조명되면서 교민사회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예전에는 캄보디아 시엠레아프에 위치한 세계문화유산 앙코르와트를 방문하는 여행객이 많았지만 범죄단지 실태가 알려진 뒤에는 한인 식당, 슈퍼마켓 등 운영에 어려움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범죄단지 주변 상점 정도만 살아남은 상태라고 한다.
김 부회장은 “한국 취업이 힘들어서인지 캄보디아에 1년 살면서 1억원 벌고 나간다는 생각으로 왔다가 다 뺏기고 알몸으로 나온 사람을 많이 봤다”며 “(고액 아르바이트 등 범죄를) 통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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