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불안·기득권 부패 불만
“달라져야 한다”는 메시지
한국 현실 어떤지 돌아봐야
정부 정책에 반대하고, 입법부에 행동을 촉구하는 집회·시위는 전 세계 어디서든 진행되는, 그리 특별하진 않은 일이다. 그러나 최근 해외 곳곳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공통점 한 가지가 눈에 띈다. 바로 ‘Gen Z(Z세대)’다. Z세대는 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 출생, 2030대 청년층을 말한다. 동남아, 남미, 아프리카 등 곳곳에서 Z세대가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Z세대 반정부시위의 시작은 지난 8월 인도네시아였다. 의원들이 주택 수당으로 1인당 월 5000만루피아(약 430만원)를 받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며 분노를 샀다. 시위는 네팔로 이어졌다. 정부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26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접속을 차단하자 Z세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동티모르와 필리핀에서도 시위가 잇따랐다.

파라과이에서는 청년들이 정치권 부패와 일자리 부족 등을 비판하고 국가 예산 투명성과 치안 개선 등을 요구하며 대학생들이 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우리가 99.9%다’라는 구호 아래 뭉쳤다. 국민 다수의 뜻임을 의미한다. 페루에서도 연금 가입 의무화와 고용 불안정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Z세대 시위는 아프리카 모로코와 마다가스카르에서도 나타났다. 모로코에서는 낙후한 교육·의료 서비스가, 마다가스카르에서는 만연한 빈곤과 잦은 단전·단수가 청년층의 분노를 키웠다.
각국 시위의 계기는 다르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고용 불안, 양극화, 기득권의 부패가 기저에 깔렸다는 점에서는 같다. 청년들은 열심히 삶을 살아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아무리 해도 돈과 권력을 쥔 기득권층을 따라잡긴 어렵다. 현실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쌓일 수밖에 없다. 정치인을 포함한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부와 권세를 공고히 하는 데만 관심을 가진다. 대다수 서민 삶에 필요한 교육, 치안, 사회 인프라 개선은 뒷전이다.
과거와 달리 디지털화로 무장한 Z세대는 SNS를 통해 수많은 정보를 접한다. 납득하기 어려운 불평등과 부패를 알게 된 이들은 참지 않는다.
시위를 주도하는 특정 인물이나 조직은 없다.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밀짚모자를 쓴 해골 깃발’을 상징으로 쓴다는 점이 특이하긴 하다. 해골 깃발은 Z세대에게 인기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주인공 몽키 D 루피가 배에 내거는 깃발이다. 해골 깃발은 불의·억압에 대한 저항과 자유를 상징한다.
거리로 나선 Z세대가 바라는 것은 ‘변화’다. 정부가, 정치가, 사회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Z세대의 목소리는 조금씩 반영되기 시작했다. 네팔에서는 대통령과 총리가 물러났고, 동티모르에서는 추진하려던 국회의원 새 차량 지급을 철회하고, 국회의원 종신 연금을 폐지하기로 했다. 마다가스카르 대통령도 흔들리고 있다.
해외 청년층의 행보를 전해 들으며 한국의 상황을 돌아보게 된다. 시위는 다른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는 부패가 없는 민주사회이고 열심히 노력하면 그만큼의 대가가 따라오는 공정한 시스템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아직 크게 터져 나오는 목소리가 없다고 불만이 없는 것일까.
지난 8월 청년층 고용률(15~29세 인구 중 취업자 비율)은 45.1%로 60세 이상 고용률보다 낮다. 취업을 위해, 큰 돈벌이를 위해 캄보디아까지 갔다가 생명까지 위협받는 사건은 분노를 넘어 아픔으로 다가온다. 국제투명성기구의 2024년도 국가청렴도(CPI·부패인식지수) 조사에서 한국은 180국 가운데 30위로 상위권이지만, 암호화폐 범죄 등 신종 부패 발생 요인 확대와 정쟁으로 인한 양극화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올해 초 발표된 ‘청년 삶 실태조사’를 보면 청년의 우울 증상 유병률은 8.8%로 2년 만에 2%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우리도 변화가 필요하다.
기성세대는 Z세대에 대해 종종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자신만의 개성과 관심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특성은 ‘이기적’이라고 취급된다. 질문해도 답을 안 하고 빤히 바라보는 ‘젠지 스테어’라는 단어가 등장, 소통 능력 부족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들이 힘겨워하고 좌절한다면 우리 사회 미래도 밝지 않다는 것이다. Z세대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고민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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