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수입 증가·지출 감소 효과
국내 기업 수출 타격 축소 취지
美 자극 우려에 세제개편엔 빠져
관세 협상 난항에 재논의 급부상
국내 생산 친환경차 세액공제 땐
현대차·기아 1.4조 법인세 감면
여야 관련 법안 잇단 발의 상태
기재부, 취지 공감하지만 신중론
“WTO 협정 위반 소지·악용 우려
생산 증가·리쇼어링 효과 분석을”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한국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국내생산촉진세제)이 시행되면 국내 자동차업계가 생산하는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 관련 산업에서 3년간 1조7790억원의 재정 기여가 추가로 발생한다는 전망이 나왔다.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에 25% 관세 부과를 이어가는 등 한·미 관세 협상이 난항을 겪는 가운데, 관련 기업의 타격을 줄이기 위해 국내생산촉진세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8일 세계일보가 입수한 현대차·기아의 ‘국내생산촉진세제 관련 연구’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친환경차(전기차·수소차 등)에 대해 10%의 생산 세액공제가 도입될 경우 현대차·기아는 내년 4700억원의 법인세 감면 혜택을 누릴 것으로 추산됐다. 2027년에는 4720억원, 2028년은 4730억원으로 3년간 총 1조4150억원이 감면된다. 법인세 부담액은 연간 4.81% 감소하게 된다. 2021∼2024년 내수 판매실적을 바탕으로 향후 실적을 추정해 계산한 수치다.
국내생산촉진세제 신설로 파생되는 조세수입 증가와 재정지출 감소 효과는 3년간 1조7790억원으로 예상됐다. 2026년 6510억원, 2027년 5910억원, 2028년 5370억원이다.
우선 세액 공제로 현대차·기아의 매출이 늘어남에 따라 관련 자동차 산업의 부가가치 유발액(8조2150억원)이 늘어나 정부의 법인세 등 조세수입이 3년간 1조7110억원 증가한다. 현대차·기아 재무자료와 한국은행 ‘자동차’ 투입부문의 부가가치·취업·고용 유발계수, 국회예산정책처의 국세수입 탄력성을 적용한 값이다. 아울러 관련 산업의 취업자 증가(5만4746명)로 고용보험 구직급여 등 정부 재정지출이 3년간 680억원 감소한다.

국내생산촉진세제의 추가 재정기여액에서 법인세 감면액을 제외한 순편익액은 3년간 총 3640억원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6년 1820억원, 2027년 1200억원, 2028년 630억원이다.
보고서는 “국내생산촉진세제 신설은 부가가치 유발 효과와 고용창출효과를 반영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충분한 경제적 효과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국내생산촉진세제는 국내에서 생산·판매되는 제품의 세금 일부를 공제해주는 제도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투자세액공제는 설비나 기술에 투자한 금액의 세금 일부를 공제해주는 형태로 운영된다. 기업의 설비 투자를 촉진해 생산 능력 확대를 유도하는 것인데, 설비 투자가 지속되기 어려운 기업 등은 혜택을 보기 어려운 구조였다. 이에 일본과 미국, 호주처럼 국내에서도 기업의 제품 ‘생산’을 기준으로 세금 일부를 공제하는 ‘생산세액공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다.

당정도 국내생산촉진세제 신설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다. 여당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경선 기간이던 지난 2월 현대자동차 현장 간담회를 가지면서 국내생산촉진세제 관련 논의가 활성화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전략 산업 분야에 대해 국내 생산과 고용을 늘리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그 방법으로 국내생산촉진세제를 제안했다. 이 대통령은 국내생산촉진세제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민주당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를 중심으로 관련 논의를 이어왔다. 기재위 소속 김태년·정일영·진성준·정태호 의원 등이 국내생산촉진세제 신설을 골자로 하는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들은 국내 기업들이 미국 관세를 이유로 미국 이전을 고민하고 대미 투자가 늘어난 만큼 국내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국내생산촉진세제 도입 필요성에 공감대를 이뤘다.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에도 제도 도입 필요성은 지속 제기됐다. 민주당은 지난 7월 세제개편안 당정협의회에서도 정부에 국내생산촉진세제 포함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다만 한·미 관세협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와 세수 부족 등을 이유로 이번 세제개편안에는 국내생산촉진세제가 도입되지 않았다.
최근 한·미 관세협상이 교착 국면에 접어들면서 기류는 달라졌다. 여당에서는 일본 등 각국이 후속 협상에서 각자도생하고 있어, 우리도 자국 기업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기재위 관계자는 “일본도 협상 결과가 달라지고 관세 협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지금 나와 있는 제도는 빨리 시행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야당인 국민의힘도 김상훈·김은혜 의원 등이 유사한 법안을 발의해 논의에 탄력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다만 정부는 국내생산촉진세제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신설하는 제도인 만큼 신중하게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는 국제 분쟁에 휘말리거나 제도가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제도를 만든다면 세계무역기구(WTO)의 보조금 협정을 위반하지 않도록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산 세액을 공제받은 기업이 파산해 정부가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나 세액 공제를 받기 위해 외국 법인이 완성품 생산만 국내에서 할 가능성 등에 대한 방지책도 만들어야 한다.
기재부는 국내생산촉진세제의 세액 공제 효과에 대해서도 충분한 검증이 있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제도 도입으로 인한 기업의 생산량 증가, 해외 나가있던 기업이 국내로 돌아오는 리쇼어링 효과 등에 대한 계측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기재부는 국내생산촉진세제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국내 생산 기반 확보를 위한 세제 지원 방안 검토’ 정책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기재위는 기재부 용역 보고서를 받은 뒤 후속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