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1000만명이 찾는 도시 전북 전주. 관광객들은 그 매력의 근원을 한옥, 한식, 판소리로 대표되는 전통문화와 역사적 자산에서 찾는다. 그런데 최근 전주시가 체류형 관광을 활성화하겠다며 한옥마을 뒷산인 기린봉(해발 307m)에 900억원을 들여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도심 속 옛 저수지 아중호수에서 기린봉을 거쳐 한옥마을까지 이어지는 2.4㎞ 구간에 케이블카를 놓으면 향후 24년간 1조원이 넘는 생산 유발 효과와 7600명에 달하는 취업 유발 효과를 창출할 것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하지만 용역은 어디까지나 추정치일 뿐이다. 전국 각지 케이블카 사업이 ‘황금알’을 기대했으나, 상당수가 적자 운영에 시달리고 있다. 경북 울진 왕피천케이블카는 2020년 7월 운영 이후 경영난으로 3년간 두 차례나 중단됐고, 이듬해 개통된 전남 해남 명량해상케이블카 탑승객은 목표 100만명의 20%인 20만명에 그쳐 3년간 누적 적자 148억원을 기록했다. 경남 밀양 얼음골케이블카도 첫해를 제외하고 매년 10억원 이상 적자가 났고, 경남 하동과 경기 화성 제부도, 파주 임진각 등지 케이블카 역시 수억∼수십억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

성공작으로 꼽힌 경남 통영 케이블카는 2008년 이후 16년간 1600만명이 탑승했음에도 지난해 연간 순이익은 3억원대에 그쳤다. 2015년 국내 처음으로 바다 위에 설치된 전남 여수해상케이블카도 2018년 180만명에서 지난해 104만명으로 줄었고, 국내 최장(3.23㎞) 길이로 관심을 끈 목포 해상케이블카 역시 연간 65만∼98만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관광용 케이블카는 전국 40여곳. 이 중 절반 이상이 2010년 이후 들어섰으며 현재 추진 중인 지자체도 20곳이 넘는다.
더 큰 문제는 전주 케이블카 설치가 지역 내 가장 소중한 자산인 전통문화와 역사적 경관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케이블카 노선은 견훤왕궁터, 동고산성, 오목대 등 전주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이 밀집한 곳을 관통한다. 거대한 철탑과 케이블이 ‘가장 한국적인 도시’와 조화를 이루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인근 진안군에서도 2015년 마이산에 케이블카를 추진했으나 환경영향평가와 소송을 거치며 지역 갈등만 키운 끝에 결국 포기했다.
행정의 신뢰 문제도 무겁다. 시는 전주역과 한옥마을을 잇는 ‘트램 사업’을 적극 추진했지만, 시장 교체와 함께 전면 백지화했다. 남원시에서는 전임 시장이 관광테마파크에 추진한 모노레일·집와이어 사업을 후임 시장 반대로 중단시켜 400억원 이상의 세금을 민간사업자 배상금으로 물어줄 처지다. 행정의 일관성이 무너질 때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 몫이다.
시민들은 전주가 지켜야 할 가치는 ‘진짜 전주다움’에 있다고 말한다. 전통 자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골목·시장·생활 문화를 잇는 콘텐츠를 개발하고 지역 상권을 촘촘히 연결하는 방식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관광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시적 흥행보다 전주의 정체성과 가치를 지키기 위한 깊이 있는 논의다. 행정의 신뢰와 시민의 자산을 걸고 추진할 사업이라면 답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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