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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민주주의 위협하는 정치와 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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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5-14 22:48:40 수정 : 2025-05-14 22:4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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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겁박은 ‘다수 폭정’의 전조
국민주권과 삼권분립은 조화돼야
대선 임박 李 재판 속도전이 빌미
민주당·대법원 권한 행사 자제를

미국 헌법을 설계한 ‘건국의 아버지들’이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지점은 ‘다수의 폭정(tyranny of majority)’이었다. 영국 왕의 폭정에 항거해서 독립 전쟁을 치른 신생 미국은 왕이 다스리지 않는 국민주권의 공화정을 지향했다. 모든 제도가 그렇듯이 설계대로 운용되지는 않는다. 주권자인 국민이 독재자를 선출하거나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지도자가 독재자로 표변하면 헌정 질서의 위기가 온다. 이 문제를 놓고 고심한 건국의 아버지들은 독립된 사법부 창설이라는 묘안을 냈다. 입법과 행정, 사법이 서로 견제하면서 균형을 이루는 삼권분립의 원칙이다.

지금은 국민주권과 삼권분립이 한 묶음으로 이해되지만, 당시만 해도 독립된 사법부는 국민주권의 원칙에 비춰봤을 때 이질적이고 생소한 개념이었다. 국민주권 우선론자들은 국민이 직접 주권을 위임한 대통령·의원과 임명직에 불과한 연방대법원 판사를 동격으로 취급할 수 없다고 봤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격론 끝에 내린 결론은, 대통령 권력이 독재로 변하거나 입법부의 다수가 폭주할 때 제3의 헌법기관이 헌정 체제를 수호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 역할을 사법부에 맡겼다.

조남규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공표) 사건이 로스쿨에서나 강론되던 ‘국민주권 대 삼권분립’ 논쟁을 대선 쟁점으로 만들었다. 지난 1일 이 후보 선거법 사건의 2심 무죄를 깨고 이 사건을 유죄 취지로 서울고법에 내려보낸 대법원 판결이 도화선이 됐다. 민주당은 “사법부가 대선에 개입하려 한다”고 반발했다. 선출되지도 않은 대법원 판사들이 감히 지지율 1위인 이 후보를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 주저앉히려 하느냐는 것이다. “법도 국민의 합의다. 결국 국민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 후보 발언은 국민주권 우선의 논리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로 이 후보의 선거법 사건은 유죄가 확정적이다. 서울고법이 파기환송심 판결을 서두르고 대법원이 대선 전에 벌금 100만원 이상인 형을 확정했으면 이 후보는 대선 출마 자격을 잃었을 것이다. 민주당은 후보 없이 대선을 치를 뻔했다. 그에 따른 혼란과 갈등은 가늠하기도 어렵다. 이런 사법권의 행사가 정의와 공정의 기준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나. 1년 안에 마치도록 법에 명문화돼 있는 선거법 사건을 2년6개월이나 지연시킨 사법부가 이제 와서 재판을 서둘렀으니 ‘정치 재판’이란 비판을 받는다.

대법원발 대선 혼란은 서울고법이 이 사건 기일을 대선 이후로 미루면서 잦아들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이제는 자기 차례라는 듯이 사법부를 향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민주당은 대법원의 ‘대선 개입 판결’을 겨냥한 청문회를 열고 조희대 대법원장을 겨냥한 특검법을 발의했다.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겠다면서 14명인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했다. 국민주권, 더 정확히는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대선후보와 다수당에 총구를 들이댄 죄를 묻겠다는 으름장이다. 이 후보는 사법부를 향해 “그 총구가 우리를 향하면 고쳐야 한다”고 했다.

이런 방식의 사법부 압박은 삼권분립의 헌정 체제를 위협한다. 국민주권의 논리를 극단으로 끌고 가면 독재도 용인된다. 민주당은 이 후보 선거법 사건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들기 위해 허위 사실 공표 조항을 개정하려 한다. 이 후보가 대통령이 돼서 이 개정안을 직접 공포하면 자신의 선거법 재판에서 ‘면소(免訴·법 조항 폐지로 처벌 못함)’ 판결을 받을 수 있다.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Nemo iudex in causa sua)’는 ‘법의 지배’ 원칙에 배치된다. 국민은 민주당과 이 후보가 입법 권력에 이어 행정 권력까지 장악한 뒤 사법부마저 종속시키는 절대 권력으로 변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기우이길 바란다.

대통령이나 국회, 사법부가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조자룡이 헌 칼 쓰듯 휘두르면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한다. 교훈이 될 만한 사례를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을 남용하다 파면된 게 불과 한 달여 전이다. 정치와 사법, 모두 자제해야 한다.


조남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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