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현대산업의 쌀이자 국가안보의 요체라 불린다. PC·핸드폰과 가전제품은 물론 자동차 등에 이르기까지 전기가 사용되는 제품치고 반도체가 쓰이지 않는 게 없다. 방산분야에도 수많은 반도체가 들어가면서 반도체 능력이 첨단무기의 성능을 좌우하는 시대다. 세계 각국이 반도체 기술 패권 장악을 위한 총력전을 벌이는 까닭이다.
주요국들은 보조금도 아낌없이 쏟아붓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미국은 2022년 이후 5년간 527억달러(약 71조원)를 반도체 기업들에 지원하고 있다. 유럽이 430억유로(62조원)를 투입할 예정이고, 일본은 지난달 10조엔(91조원) 규모의 지원책을 발표했다. 중국도 10년 전부터 6500억위안을 이미 지원했고 올해 3000억위안 이상을 추가했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아직 반도체 보조금을 한 푼도 준 적이 없다.
미 상무부가 20일 삼성전자의 반도체 설비투자에 상응해 47억4500만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투자 규모가 줄면서 애초 약속했던 64억달러에 비해 26%가량 삭감된 수준이다. 투자 대비 비율은 약 12.7%로 미국 마이크론(12.3%)과 인텔(8.7%), 대만 TSMC(10.3%)보다 높다. 인공지능(AI)시대에 제때 대처하지 못해 위기론에 시달려온 삼성으로서는 가뭄 속 단비다. SK하이닉스도 4억5800만달러의 보조금을 받기로 확정됐다.
얼마 전 공학기술계 석학과 산업계 리더들의 모임인 한국공학한림원은 한국 반도체 현실을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경고했다. 반도체 기술격차가 눈에 띄게 좁혀졌는데 성공비결이었던 ‘치열함’과 ‘부지런함’마저 없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력을 잃은 한국을 상대나 하겠냐는 우려마저 나오는 판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치권은 아랑곳없다. 여당이 한 달 전 보조금 지원, 주 52시간 예외 적용 등을 담은 반도체특별법을 발의했지만 탄핵정국 탓에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반도체는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데 국가대항전에서 낙오할 경우 수출도 경제도 치명적 타격을 피할 길이 없다. 이러다 한국 경제·안보의 최종병기마저 사라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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