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여정의 친언니는 ‘분당 미녀’로 유명했고, 한지민은 동네에서 인기 많던 언니의 ‘깐깐한 동생’으로 통했다. 한채영도 176㎝의 큰 키와 모델 같은 외모를 지닌 언니가 워낙 눈에 띄어 자신의 이름 대신 ‘세라 동생’으로 불렸다. 빼어난 외모로 주목받아 온 세 배우에게도 어린 시절 친언니의 미모와 인기에 가려졌던 때가 있었다. ◆ 조여정이 자랑한 ‘분당 미녀’ 친언니조여정은 학창 시절 자신보다 친언니 조연정씨가 미모로 더 유명했다고 밝혔다. 그는
누적 기부액 200억원을 기록한 가수 김장훈이 호화로운 자택 대신 월세살이를 고수하는 진짜 이유를 밝혔다. 수십 년간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스타의 행보라기엔 파격적인 선택 뒤에는 주변 사람들을 향한 남다른 철학이 담겨 있었다.방송에서 김장훈은 어떻게 흘러가든 행복할 자신 있으며 백만원을 벌어도 재미있게 살 사람이라고 전했다. 이는 단순히 낙천적인 태도를 넘어 수십 년간 파란만장한 세월을 견뎌낸 이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을 보여준다. 어린
김여정(사진)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이 20일 담화를 통해 한국이 미국에 종속되어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면서 우리 측을 조롱했다. 김 부장은 전날 밤엔 한·미 연합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 축소를 평가절하하면서도 북·미 정상간 좋은 관계를 언급해 북·미 대화의 여지를 남겼다. 반면 한국을 향해서는 비난을 퍼부음으로써 한국을 상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김 부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돌연 훈련 축
‘메가 프로젝트’에 전력수요 지각변동…李공약 ‘에너지고속도로’ 수정 불가피3대 메가 프로젝트로 호남권 6.3기가와트(GW) 등 신규 전력 수요가 생기면서 호남과 수도권을 잇는 일명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사업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정부는 새만금~서화성 구간인 1단계 사업은 예정대로 추진하되, 나머지 구간은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토대로 일부 수정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에너지
항일과 변절의 그림자…역사에 ‘완벽한 가짜’는 없다 [오상도의 경기유랑]역사의 물줄기는 때로 잔혹한 반전을 품는다. 일제의 압제에 맞서 민족의 양심을 대변하고 피 흘려 싸웠던 애국지사들이 세월이 흘러 식민 지배의 부역자로 전락하는 비극은 한국 현대사의 깊은 상흔이다.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촉발된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경기 안양시로까지 번진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1872~1927)에 대한 친일 논란은, 우리가 기억하
[설왕설래] ICC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두 차례 세계대전에 대한 반성에서 집단학살(제노사이드)·반인도적 범죄·전쟁범죄를 단죄하기 위해 2002년 네덜란드 헤이그에 설치된 상설법원이다. 종종 국제사법재판소(ICJ)와 혼동한다. ICJ는 영토 등 국가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유엔 소속 기관이다. ICC는 개인의 죄과에 대한 형사책임을 물어 범죄재발 방지를 목적으로 하고 유엔에
[기자가만난세상] 쪼갰는데 더 커진 당국의 예산 권한 “조직이 쪼개지니까 오히려 권한이 더 집중되더라고요. 흥미로운 행정학 연구 소재일 것 같아요.”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정부 관계자는 기획재정부가 2개 부처로 분리된 첫해를 보내는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기존 기재부는 18년 만에 재정경제부(재경부)와 기획예산처(기획처)로 쪼개져 올해 1월 출범했다. 세종 공무원들은 경제정책 수립과 예산 편성 권한을 동시
[삶과문화] ‘손맛’이 ‘에이스’다 ‘내가 먹는 것이 결국 나를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농담 조금 섞어서) 나는 밀가루 박력분과 설탕으로 돼 있을 것이다. 과자를 달고 살아서다. 그냥 달고 사는 게 아니다. 과자를 주식처럼 먹는다. 미식가와는 거리가 멀지만, 과자에 있어서 만큼은 감별력이 뛰어나서 친구들 사이에서 ‘과자 덕후 중에 찐 덕후’로 통하기도 한다. 그런 내게도 편애하
[박일호의미술여행] 말을 걸어오는 색 면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미술이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게 된 데에는 추상표현주의의 시작을 연 잭슨 폴록의 공이 컸다. 그 이후의 화가들은 물감을 뿌리고 흘리고 떨어뜨리는 폴록의 방법에 매혹됐고, 자신들만의 작업 방식을 개척해 나갔다. 그중 한 명이 모리스 루이스였다. 루이스는 묽은 아크릴 물감을 캔버스에 부어서 물감이 캔버스 속으로 스며들게 했는데, 자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