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대사에서 사법부와 가장 심각한 갈등을 빚은 대통령으로 프랭클린 루스벨트(1931∼1945년 재임)가 꼽힌다. 루스벨트는 1929년 발생한 대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부 재정의 과감한 투입을 통한 공공 사업에 크게 의존했다. 이른바 ‘뉴딜’ 정책이다. 그런데 보수적인 대법관들이 보기에 이는 공산주의 국가의 행태나 다를 게 없었다. 대법원의 잇단 위헌 판결로 뉴딜 정책이 좌초 위기에 놓이자 루스벨트는 사법 개혁안을 꺼내들었다. 대법관들 가운데 일정한 나이(70세 6개월)에 도달한 이가 생겨날 때마다 대법관 정원을 1명씩 늘린다는 것이다. 9명으로 제한된 대법관을 최대 18명까지 증원해 루스벨트 행정부를 지지하는 법률가들을 대법원에 밀어 넣겠다는 의도였다. ‘사법부 독립 침해’라는 반발에 부딪혀 실현되지는 못했다.
2021년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급격히 보수화한 대법원과 마주했다. 공화당 정권 시절 임명된 대법관이 6명으로 민주당 대법관(3명)을 압도했다. 보수와 진보의 진영 논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건마다 6 대 3, 또는 5 대 4로 보수가 승리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중에서도 2022년 ‘여성의 낙태할 권리는 헌법상 기본권’이란 취지의 로 대(對) 웨이드 사건 판례(1973)를 거의 반세기 만에 뒤엎은 결정이 가장 대표적이다. 격분한 바이든은 대법관의 종신제 폐지 및 임기제 도입 등이 포함된 사법 개혁안을 강구했다. 하지만 이는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나고 말았다.
트럼프는 첫번째 임기(2017∼2021)부터 사법부를 거칠게 다뤘다. 대법원에 대해선 어느 정도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연방항소법원이나 연방지방법원 등 하급심에서 행정부에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해당 판사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임명된 경우에는 아예 ‘오바마 판사’라고 딱지를 붙이기까지 했다. 이에 2018년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이 직접 나서 “미국에는 ‘오바마 판사’나 ‘트럼프 판사’, ‘부시 판사’나 ‘클린턴 판사’는 없다”고 반박했다. 대법원장이 대통령을 겨냥해 성명을 발표한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트럼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로버츠를 향해 “오바마 판사들은 실제로 있다”고 응수하며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사법부와 이런저런 충돌이 있었지만, 이미 보수의 굳건한 아성(牙旗)이 된 대법원만은 이를 피해 갈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20일 대법원이 트럼프의 분신과도 같은 상호 관세 정책에 위법 판결을 내렸다. ‘세금 부과는 행정부가 아닌 의회의 권한이고 관세 또한 세금의 일부’라는 다수의견에 대법관 6명이 가담했다. 여기에는 트럼프가 직접 임명한 보수 대법관들도 끼어 있다. 격노한 트럼프는 관세 부과에 반대한 대법관들을 겨냥해 “절대적으로 부끄러워해야 한다” “옳은 일을 할 용기가 부족하다” 등 폭언을 퍼부었다. 지고는 못 사는 트럼프의 불같은 성정(性情)을 감안할 때 조만간 미국 법원에도 ‘사법 개혁’이란 이름 아래 온갖 보복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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