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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유한한 삶을 사랑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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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인식 자체가 삶에 가치 부여
행복은 ‘강도’ 아니라 빈도의 문제
거창함보다 보통의 일상 속에서
‘작은 변화’ 음미하며 사는 게 중요

“시간이란 무엇일까.” “인간은 왜 죽어야 하나.” 어렸을 때부터 품어온 궁금증이다. 나는 삶이 내게 준, 이 숙제를 풀지 못해 자주 끙끙거렸다. 허무와 마주하기도 했다. 최근, 물리학자·시인·문학평론가·행복학자·소방관 등 자기 분야에 고유한 인장을 찍은 분들과 나눈 대화를 한 권의 인터뷰집에 담을 기회가 있었다. 나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그들에게 물었다.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끝이 있음을 알면서도 삶을 사랑하며 사는 방법은 무엇인지.

죽음을 향한 나의 두려움에 시각의 전환을 건넨 건 뜻밖에도 ‘물리’였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원자의 재배열이다. 내가 죽어도 내 몸을 이루는 원자들은 흩어져 다른 것의 일부가 된다.”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가 한 말이다. 그의 어떤 말은 문학보다 더 큰 위로를 안겼고, 세상을 더 깊이 생각하게 했다. 그는 카뮈의 소설을 인용해 삶의 의미에 대해서도 자문하게 했다 “‘시지프 신화’에서 카뮈는 ‘우리는 왜 자살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요. 삶의 끝은 죽음인데, 뭐 하러 열심히 사느냐는 거였죠.” 그는 이 문구가 삶이 유한하기에 가치 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했다. “생명이 영원하다고 생각해 보세요. 뭘 해도 의미를 찾기 힘들어요. 감옥에 100년 있어도 상관없죠. 여전히 살아갈 무한한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요. 죽음을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에요.”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작가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작가

문학평론가 신형철을 만난 후엔 똑같이 굴러가는 것 같은 하루하루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나 다채로울 수 있는가를 알게 됐다. 그는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허무’인 것 같다면 이를 시간과 연결 지었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서 모든 게 변한다고 느껴지거나, 너무 천천히 흘러서 아무 변화도 없어 보이거나 할 때, 전자는 덧없어서 허무하고, 후자는 권태로워서 허무해요.” 그럼 시간은 어떻게 경험될 때 행복해질까. 안정적인 ‘반복’ 속에 적절한 ‘차이’가 더해질 때다. 이때 “차이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작은 변화를 발견하고 음미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그는 알려줬다.

신 평론가가 들려준 이야기는 행복학자 서은국의 행복론과도 연결됐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에 있다”고 설파해 온 서 교수는 “많은 사람이 ‘죽어라 고생해서 강남에 아파트를 사면, 좋은 대학 간판을 달면 행복할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런 행복도 너무 빨리 소멸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 온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중요한 건, 도착해 있는 시간을 놓치지 않고 음미하는 것임을 새기게 했다.

인간은 누구나 나이가 든다. 그러나 모두가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나잇값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가. 70대 크리에이터 장명숙(밀라논나)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통해 어른답게 익어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증명한 사람이었다. 설교가 아닌, 그저 먼저 세상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젊은이들에게 응원을 건네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의 물리적 길이는 같을지 몰라도, 그 안에 담기는 삶의 밀도는 다르구나.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사람들을 위해 달려가는 소방관 백경에게 시간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었다. 구급차를 타면서 그가 깨달은 것. “삶은 한순간에 깨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걸 알게 된 후에 그는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일상이 얼마나 특별한가를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사람이 죽기 전에 가장 아쉬워하는 건, 살면서 놓친 작은 것들이더라고요. 저희 할머니도 시시콜콜한 것들을 유서에 써놓고 돌아가셨어요. 한마디라도 더 나눌걸. 좋아한다고 이야기할걸. 한번 먹어볼걸. 결국 후회의 순간을 많이 안 만들고, 그때그때 좋은 것들을 눈에 담고 손에 쥐고 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결국 그들이 내게 알려준 건, 유한한 삶을 사랑하는 방법이 거창한 데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것. 좋아하는 사람과 밥을 먹는 것. 그 안에 삶의 진짜 의미가 있음을, 더 늦기 전에 알게 돼서 다행이다.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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