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세계의 전부일 수는 없어
부산 북항 찾아온 부캉이처럼
다른 생명 앞에선 허물어질 뿐
지난주 노벨문학상 발표 시각인 오후 8시, 나는 출판사 타이피스트에서 이린아 시인과 듀엣 낭독회를 하고 있었다. 잠시 휴대전화로 뉴스를 검색했다. 앤 카슨. 수상자의 이름을 확인하고 낭독회에 참석한 독자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수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미리 골라 온 앤 카슨의 시 ‘신의 정의’를 소개했다. 신이 정의를 창조하려던 날, 잠자리를 만드는 일에 빠져 시간 감각을 잃어버렸다는 시다. 정의를 만드는 일보다 작은 생명 하나가 신의 마음을 더 오래 붙들었다는 내용이다.
앤 카슨은 정의라는 크고 추상적인 관념을 잠자리라는 작고 구체적인 생명과 연결했다. 신의 계획은 잠자리 때문에 멈추었지만 우리는 그 멈춤을 단순한 방해나 지체 정도로만 볼 수 있을까. 이 시는 우리가 나름의 질서를 세우는 동안 그 질서의 바깥에 놓인 생명들은 어떻게 되는지 생각하게 한다. 인간은 장소마다 이름을 붙이고 용도를 정한다. 항구는 배가 드나드는 곳이고, 바다는 상어가 살아가는 곳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최근 부산 북항에 나타난 상어 한 마리가 그 익숙한 구획을 흔들어 놓았다.
3m가 넘는 상어에게는 ‘부캉이’라는 애칭까지 붙었다. 넓은 바다를 두고 왜 좁은 수로에 머무는지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출구를 찾지 못한 것인지, 출산을 위해 머무는 것인지 여러 추측이 나왔다. 바다 쪽으로 돌아가도록 몰아보기도 했지만 상어는 다시 수로 안쪽으로 돌아왔다. ‘항구’라는 이름 역시 상어가 그곳에 머무는 이유를 설명해 주지 못한다. 최근에는 주둥이의 상처가 발견됐고, 수온이 더 떨어지면 생존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부캉이의 상황은 우리가 정한 장소의 질서가 그곳에 머무는 모든 생명의 사정까지 헤아리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른 생명이 우리가 정한 용도와 다르게 공간을 사용하면, 우리는 먼저 어느 쪽이 잘못되었는지 판단하려 한다. D H 로런스의 시 ‘뱀’에서 화자는 그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돌려놓는다. “뱀 한 마리가 나의 샘으로 왔다 뜨겁고 뜨거운 여름날, /…/ 가만히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그 뱀이 나보다 먼저 왔기에”로 시작하는 시다. 화자는 자신의 샘에 찾아온 뱀을 발견하지만 뱀이 먼저 와 물을 마시기에 기다린다. 뱀에게 차례를 양보하면서도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끝내 나뭇가지를 던진다. 예의를 지키려는 마음과 그것을 무너뜨리는 본능적 공포가 한 사람의 내면에서 충돌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자신이 주인이라고 여겨온 공간에서 스스로가 뱀보다 늦게 도착한 두 번째 사람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부캉이의 존재가 상어가 왜 그곳에 있는지를 묻게 한다면, 로런스의 화자는 자신이 그 공간의 주인인지 되묻는다. 뱀의 사정을 알기 전에 자신이 그곳의 주인이라고 믿어온 근거부터 의심하는 것이다. 다른 생명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인가 하는 고민은, 애초에 그 자리가 누구의 것이었는지 묻는 데서 출발한다. 인간이 정한 질서가 편리하고 필요하더라도 그것이 세계의 전부일 수는 없다. 문제는 질서 자체보다 그것을 유일한 기준으로 여길 때 생기는 오만이다.
앤 카슨의 시에서 신은 정의를 만들려던 날 잠자리를 만드는 데 빠져 시간을 잊는다. 어쩌면 그 작은 생명은 단지 정의의 바깥에 놓인 존재가 아니라, 정의라는 추상적 관념이 미처 헤아리지 못한 세계를 새롭게 증명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질서는 언제나 누군가의 관점에서 만들어진다. 우리가 정한 경계가 다른 생명에게는 아무런 경계도 되지 못하고 허물어질 뿐이다. 부캉이는 아직 머물고 있는데, 북항의 수온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그 생존을 걱정하면서도, 우리는 그곳을 인간의 익숙하고 좁은 질서로만 억지로 이해하려 한다. 인간이 정한 질서를 당연한 기준으로 삼는 순간,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존재는 예외가 된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그곳의 주인이라고 여기는 근거부터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나 역시 누군가가 먼저 깊이 머물다 간 이 땅에 뒤늦게 도착한 두 번째 사람이 아닌가.
천수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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