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통식 행사 놓고 극과극 풍경
북·중·러 간 미묘한 변화 드러내
美도 北 러브콜… 韓 어떤 패 있나
지난달 7일, 북한과 러시아를 잇는 두만강 자동차다리 개통식이 열렸다. 지난해 4월 착공해 495일 만에 완공했고, 곧바로 문을 열었다. 양국 국기가 걸린 관문 앞에서 폭죽이 터졌고 관료들이 테이프를 끊었다. 북·러 양국 총리는 화상으로 참석했다. 북·러 밀착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장면이었다.
이달 초, 북한과 중국을 잇는 신압록강대교도 개통식을 열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잇는 길이 약 3㎞, 왕복 4차로 규모의 이 다리는 2014년 완공됐으나 북한 측 접속도로와 통관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12년 가까이 방치됐다. 그러다 지난 6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이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둥 교민, 외교 소식통, 북한을 오가는 무역상까지 모두 북·중 수교 77주년 기념일인 10월6일 개통식을 예상했다. 그러나 개통식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세리머니만 없었을 뿐 이미 길은 열렸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지난달 20일부터 대형 화물차가 다리 위를 오가기 시작했다. 통상구도 운영 중이고, 주변으로 무역회사와 상권이 모이고 있다. 북·중 교역도 살아났다. 지난 8월 북·중 무역액은 전년 동월보다 30.9% 늘어,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가 본격화한 2017년 이후 8월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래서 의문이 더 커진다. 이미 준비가 다 되었는데 왜 개통식만 하지 않는가. 때로는 결정적인 장면 하나가 관계의 본질을 설명한다. 두만강 자동차다리는 화려한 개통식으로 북·러 관계의 현재를 보여준 반면, 신압록강대교에는 아직 그런 장면이 없다.
북한과 중국 사이에는 앙금이 있다. 중국은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뒤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부터 대북 제재에 동참해 왔다. 2017년에는 석유 공급 제한, 북한산 수출 금지, 해외 북한 노동자 송환 등을 담은 고강도 제재 결의 2397호도 통과됐다. 중국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공인 핵보유국으로 북한의 제재 완화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신압록강대교가 12년 가까이 잠들어 있었던 데에는 이런 정치적 불편함도 깔려 있었다.
이런 양국 간 균열에 러시아가 파고들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병력과 탄약, 미사일 부족에 시달린 러시아에 북한은 무기와 병력을 지원했다. 러시아는 식량, 석유, 외화, 군사기술 협력 가능성으로 화답했다. 북·러 관계는 냉전 이후 가장 가까운 단계로 올라섰다.
달갑지만은 않은 변화에 중국이 움직였다. 지난해 9월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서 시 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천안문 망루에 나란히 올라 3국의 단합을 과시했다. 올해 4월에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평양을 찾았고, 6월에는 시 주석이 7년 만에 북한을 방문해 양국의 우의와 교류·협력 강화를 강조했다. 겉으로는 결속을 외쳤지만, 그 안에서는 미묘한 삼각관계가 작동하고 있었다. 북한도 화답했지만 적극적인 것은 중국 쪽이었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런 구도가 북·중·러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안에 김 위원장과 만날 것”이라고 말했고,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도 북·일 정상회담을 주선해 달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도 꾸준히 북한과 대화를 원하고 있다. 북·중·러, 한·미·일 중 다섯 곳이 저마다의 이유로 북한을 바라보는 형국이다. 북한의 몸값이 이렇게 높았던 적이 있었던가.
그 자신감은 이미 드러난다. 북한은 남북관계를 더는 ‘민족 내부의 특수 관계’로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최근에는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과 탄도미사일 발사, 김여정의 대화 거부 메시지가 이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비핵화가 아닌 핵동결과 제재 완화를 먼저 제안한 것은 달라진 정세를 의식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방에서 러브콜을 받는 북에 이 제안이 얼마나 절실하게 들릴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어떤 패를 들고 북한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답하지 못하면 한국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가 아니라 구경꾼이 될 수 있다. “한국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까 걱정”이라는 한 단둥 교민의 말이 서울을 향한 경고로 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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