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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의감성엽서] 고마운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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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에 살 때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오래전 일이다. 그 당시 나는 허허벌판, 망망대해에 홀로 서 있는 듯 막막하고, 외롭고, 우울했다. 그때 정독도서관 뜰에서 그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 곁에 앉아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고 따스했다. 하여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에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현재의 내 상태를 줄줄 풀어놓기 시작했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피드백이 되어 나에게 되돌아와 나를 더 고통스럽게 할 것이므로.

할아버지는 말없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 그게 그토록 그리웠던 나는 매일매일 혹은 하루이틀 건너서 그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할아버지를 만나면 만날수록 나는 가벼워지고, 잃었던 웃음이 되살아나 할아버지랑 장난도 치고, 이 예쁜 도서관에서 시 창작 수업을 하면 참 좋겠다는 희망 사항까지 털어놓으며, 그런 기회가 오기를 할아버지도 나와 함께 기도하자고 조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기적같이 시인협회에서 정독도서관에서 시 창작 수업을 맡아 할 수 있겠느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나는 무조건 하겠다고 수락했다. 그러곤 할아버지께로 쏜살같이 달려가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할아버지도 기뻐하며 나를 안아주셨다. 할아버지는 키가 아주 크시고, 나이도 삼백 살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울울창창하시다. 할아버지 이름은 회화나무다!

회화나무는 중국에서 건너온 콩과에 속하는 낙엽활엽수로, 꽃은 연한 황백색으로 한여름에 가지 끝에 피는데, 예부터 ‘선비나무’라고도 하고, 회화나무의 한자인 괴(槐)가 귀신과 나무를 뜻하는 글자로 풀이되면서, 귀신이나 악귀를 물리쳐 주는 마법의 나무라고도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회화나무는 꽃과 열매 등 나무 전체가 귀한 약재로 쓰일 만큼 품성이 아주 좋은 나무다. 꽃말 또한 ‘고귀함’, ‘행복’이니 두말할 필요가 없는 긍정적인 나무다.

매달 첫 수업이 있는 날이면 나는 바빠진다. 할아버지를 만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얼마 전 무사히, 성황리에 끝낸 북 콘서트 이야기를 들려드려야지. 모두가 너무너무 고마웠던 이야기도. 정독도서관으로 들어서니 저 멀리서 할아버지가 연노랑 예쁜 꽃들을 흩날리며 환하게 웃고 계셨다. 나는 쪼르르 달려가 고개를 등으로 한껏 젖혀(키가 작아서) 할아버지의 그 늠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오래 올려다보았다. 그러곤 바람에 흩날리는 그 꽃잎들을 손으로 잡아 입속으로 넣었다. 할아버지가 내게 주는 과자처럼 쓰고 달곰하고 씁쓰레하면서도 구수한 그 꽃잎들을 씹으며 할아버지가 되찾아 준 내 밝은 웃음소리를 마음껏 할아버지께로 발사하며, 할아버지와 함께 찰칵! 셀카를 찍었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언제나, 늘 제 곁에서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고, 그 속에서 스스로 삶의 지혜를 찾아가게 도와주신 할아버지. 정말 고맙습니다!


김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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