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많이 한 손은
한울이 알고 땅이 알고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본다
일 많이 한 손 앞에서는 일이 먼저 알아보고
납작 엎드려 죽는 시늉을 한다
텃도지 물고 시사답 부치고
나락 거둬들이면 보리 심고
보리 거둬들이면 나락 심고
평생 일 떠날 일 없었던 손 아니냐
손톱이 으등그러지고 손에 풀물 들어 갈라지고
지문도 다 지워졌지만
저 손 봐라
일 많이 한 저 손 봐라
팔밭 돌 고르다 짓찧어 가운뎃손가락 구부러지지 않는 저 손 봐라
그래서 식구들 건사한 거 아니냐
죽을병 걸린 줄 알면서
병원에서 말려도 기어이 나와서
일만 하나 죽은 거 아니냐
그래 저 묻힐 데 돌 하나 안 나오고
물도 안 솟고 저렇게 땅도 제 몸 순순히 내주며
흙덩어리 얹듯 한 몸 받아들이는 거 아니냐
시를 읽는 동안 저마다 하나의 손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 손은 누구의 것인지? 부모나 형제의 것? 친구의 것? 식당이나 상점에서, 혹은 TV 속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것? 여러 개의 손이 한꺼번에 겹쳐졌을 수도 있다. 사는 내내 일을 떠날 수 없었던 손, 손들! 그런 손 앞에서는 저절로 미간에 힘이 들어간다.
삶의 이런저런 과정이 몸에 고스란히 새겨진다는 사실은 새삼 참 무섭고, 또 무겁다. 도무지 감출 수 없다니. 시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한울이 알고 땅이 알고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본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다행스러운 것일 수도 있겠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아서 일 많이 한 손도 때가 되면 편안히 쉴 수 있기를 바라본다.
시는 거듭 말한다. “저 손 봐라” “일 많이 한 저 손 봐라”. 단지 노동의 고단함이나 노동을 멈출 수 없는 우리 삶의 비극을 전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생을 최선으로 건사해낸 한 인간을 제대로 바라보고자 하는 의지. 시인은 알고 있는 것이다. 어떤 손도 진부하지 않다는 것.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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