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역사학자 필립 벨은 2012년 한국어로 번역·출간된 저서 ‘12 전환점으로 읽는 제2차 세계대전’이 국내에서 유명하다. 벨은 이 책에서 2차대전 말기인 1945년 7월 군국주의 일본이 직면한 처지를 일컬어 “이미 죽었지만 드러눕길 거부한다”고 묘사했다. 당시 일본군은 미군, 영국군 등 연합군이 본토 상륙을 시도할 것이란 가정 아래 방어 훈련에 치중하고 있었다. 연합국들 정부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초래할 이 같은 상황을 반드시 피하고 싶었다. 마침 미국에선 기존의 무기들과는 차원이 다른 원자폭탄이 순조롭게 개발되고 있었다.
일본의 동맹인 나치 독일이 패망하고 1945년 7월 베를린 인근 포츠담에서 미국·영국·소련(현 러시아) 3대 연합국 정상회의가 열리는 도중 ‘원폭 시험이 성공리에 마무리됐다’는 보고가 해리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날아들었다. 일본 본토 상륙 및 점령 작전에 투입될 병력의 희생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만으로도 트루먼은 안도했다. 군부 일각에서 “다수의 민간인 목숨까지 앗아갈 것”이라며 원폭 사용에 부정적 의견을 냈지만 트루먼은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는 미군 장병들의 전사를 최소화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했다.
포츠담 회의가 끝나고 미·영·소 3국은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권유했다. 본토 사수를 위한 결사 항전을 각오한 일본이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은 물론이다. 트루먼은 미국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처음으로 ‘핵 단추’를 누르는 길을 택했다.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廣島)에 원폭이 투하됐다. 9만∼16만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사흘 뒤인 8월9일에는 훨씬 강력한 원폭이 나가사키(長崎)를 강타했다. 히로시마 때보다 폭발력은 더 컸지만 지형적 차이 때문에 사망자 수는 적었다. 그래도 6만∼8만명이 즉사하거나 후유증으로 숨졌다.
애초 미국이 두 번째 원폭 타격 대상으로 정한 곳은 나가사키가 아닌 고쿠라(小倉)였다고 한다. 고쿠라는 옛 지명이고 오늘날에는 기타큐슈(北九州)의 일부로 흡수됐다. 2차대전 당시만 해도 고쿠라는 군수 공장이 즐비했으니 미군의 표적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다만 원폭 투하 당일 고쿠라 상공의 기상이 좋지 않자 미군 폭격기는 악천후를 피해 다른 후보지들 중 하나였던 나가사키로 기수를 돌렸다고 한다. 수만명에 이르는 인류의 운명이 날씨 때문에 한순간에 뒤바뀐 셈이다.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비극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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