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어 강요 등 정체성 위축 논란
해외 비판 목소리까지 처벌 경고
대만·美 반발 속 ‘국가 통제’ 가속
지난 1일부로 중국의 ‘민족단결진보촉진법’(민족단결법)이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55개 소수민족의 고유 정체성을 해체하고 ‘중화민족’으로의 강제 동화를 가속화하며 이들의 침묵을 강요하는 모양새다.
올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통과한 이 법안은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한족 외에 조선족, 위구르족, 티베트족 등 모든 소수민족의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 강화를 표면적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집행부 출범 이후 지속해서 추진되어 온 국가 통용 언어 보편화와 민족 융합 정책에 사법적 쐐기를 박은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베이징 남서부의 후이족 집성촌 ‘뉴제’다. 과거 중국어와 아랍어가 병기되어 있던 거리의 간판들은 대부분 아랍어가 제거된 채 중국어만 남은 상태로 전해졌다. 뉴제 골목 곳곳의 게시판에는 ‘석류알처럼 뭉쳐야 한다’ 등 민족 통합을 강조하는 관용적 구호들이 다수 배치돼 체제 결속의 분위기를 풍긴다.
이 같은 풍경의 바탕에는 민족단결법 제15조가 자리 잡고 있다. 해당 조항은 표준 중국어인 푸퉁화를 각급 학교 및 교육 기관의 기본 교육·교수 용어로 강제했다. 또 공공장소에서 푸퉁화와 소수민족 언어를 동시 사용할 경우 위치와 순서 등에서 푸퉁화를 무조건 부각하도록 의무화했다.
사실 이번 조치는 과거부터 이뤄지던 언어·문화 지우기 공작을 국가 최고 기본법으로 격상해 통합한 것에 가까워 보인다. 2022년 연변조선족자치주가 공포·시행한 ‘조선 언어문자 공작 조례 실시세칙’이 전초전 격이다. 당시 세칙에 따라 연길 시내 자영업자들은 간판 표기 시 중국어를 우선 표기해야 했고, 한글이 위나 왼쪽에 있던 간판들은 일제히 글자 위치를 바꾸거나 새것으로 교체됐다. 용정시에 위치한 시인 윤동주의 생가 역시 안내석과 ‘서시’ 시비 등의 한글 원문과 한문 번역본 위치가 바뀌는 등 언어적 주객전도가 이미 완료된 상태였다.
사법적 통제는 언어를 넘어 사상과 역사적 정체성의 영역까지 파고든다. 과거 중국 당국은 윤동주 생가 앞 안내석의 문구를 ‘중국조선족애국시인’에서 ‘중국조선족유명시인’으로 수정한 바 있다. 조선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시로써 저항하고 재판 기록과 판결문에서도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명백히 드러나는 인물을 ‘중국 조선족’이라는 틀에 가두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논리적 모순을 가리기 위한 고육책으로 느껴졌다. 윤동주가 ‘별 헤는 밤’에서 중국을 ‘이국(異國)’으로 명확히 인식했음에도 생가 내 번역 시비에서 해당 작품을 찾아볼 수 없었던 정황 역시 이와 관련이 있다.
중국 내부의 통제를 목적으로 하는 이 법안이 국제사회에서도 반발을 부르는 핵심 요인은 국경 밖까지 처벌 범위를 넓힌 확대 관할권에 있다. 법 제63조는 ‘중국 국외의 조직과 개인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겨냥해 민족단결 진보를 파괴하고 민족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를 실시하는 경우 법적 책임을 추궁한다’고 명시했다. 해외에 거주하는 위구르인, 티베트인은 물론 중국의 민족 정책이나 동북공정식 역사 왜곡을 연구하고 비판하는 외국인 학자와 단체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법 제10조는 민족단결 진보 사업에 대한 외부 세력의 간섭을 배제하며, 인권이나 종교를 빌미로 한 비판 행위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규정해 국제사회의 개입 가능성을 원천 차단했다.
가장 즉각적인 위기감이 고조된 곳은 대만이다. 대만 당국은 이 법안이 대만 독립 지지 세력을 압박하기 위한 인지전 및 법률전 도구로 활용될 것이라 보고 있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회의에서 이 법을 “국경을 초월해 탄압과 위축 효과를 가져다주는 악법”으로 규정했다. 미 상원 외교위원회 역시 여야 의원 9명이 초당적으로 동참한 반대 성명을 통해 중국이 안팎에서 소수민족의 종교와 문화를 말살하려 한다고 비판했지만 중국 외교부는 일부 국가가 허위 정보를 유포하며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는 기존 반박 입장을 고수했다.
이는 내년 제21차 당 대회와 시 주석의 4연임 결정을 앞둔 중국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내부 체제를 결속하려는 중국의 사법 칼날이 베이징을 넘어 국경 밖의 소수민족과 외국인 사회까지 숨죽이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국민소득 4만달러 벽](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7/19/128/20260719514052.jpg
)
![[특파원리포트] 침묵 강요받는 中 55개 소수민족들](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7/19/128/20260719514044.jpg
)
![[김정식칼럼] 경상수지 흑자와 3低 호황의 교훈](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7/19/128/20260719514028.jpg
)
![[심호섭의전쟁이야기] 미국 건국과 독립전쟁](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7/19/128/20260719514015.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