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30% “밤길 불안하다” 호소
순찰·검문검색 강화만으론 부족
시민 체감 ‘생명안전종합계획’을
광주 여고생 흉기 피살사건의 피해자 모교 학생회는 지난 11일 ‘더 이상 우리의 소중한 친구를 잃을 수 없다’는 제목의 성명문을 냈다. 학생회는 “이 끔찍한 비극이 그저 안타까운 일로 끝나게 두지 않기 위해 끓어오르는 비통함을 담아 다음과 같이 강력히 요구한다”며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고 우리 사회가 더욱 안전해지는 그날까지 결코 침묵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광주 경신여고·설월여고·수완고·숭일고·전남여고와 강원 속초여고·대구 상원고 등 학생회나 동아리 차원의 연대 성명이 빗발치면서 전국이 들끓었다.
어른으로서 한없는 자괴감이 든다. 공부를 마치고 밤늦게 귀가하던 17세 여고생과 남고생이 일면식 없는 20대 남성에게 살해당하고 크게 다친 사건에 사회 약자로서 ‘씻을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느꼈을 우리 아이들을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 ‘조심하고 일찍 귀가하라’는 당부로 끝낼 일이 아니다. 필자도 초등생 딸에게 “학교 끝나면 어디 가지 말고 곧바로 집으로 오라”고 일장 훈계만 늘어놨으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우리 사회가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놔야 할 시간이다.
새벽 도심 인적이 드문 인도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은 누누이 지적됐던 우리 사회 안전 위협 요인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국가데이터처의 2024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밤에 혼자 걸을 때 불안하다는 응답은 30.5%로, 여자(44.9%)가 남자(15.8%)보다 더했다. 그 이유로 ‘인적이 드묾’(26.4%), ‘가로등·폐쇄회로(CC)TV 등 안전시설 부족’(16.9%) 등을 꼽았다. 사회의 최대 불안요인으로 범죄(17.9%)를 가장 많이 지목했고,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낀 비중은 2년 전 조사보다 4.4%포인트 감소한 28.9%에 그쳤다. 5년 전보다 안전해졌다(21.9%), 5년 후에는 현재보다 안전해질 것(22.9%)이라는 응답은 각각 10.4%포인트, 9.7%포인트 줄어 사회 불안이 갈수록 커질 것으로 예고됐다. 경찰이 ‘묻지마 범죄’인 이상동기 범죄로 보고 있는 이번 사건은 결코 우연히 발생한 게 아니다.
경찰은 이번 사건 발생 후 순찰 및 거동 수상자 검문검색 강화 등을 발표했지만, 실효성을 의심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우범자 관리로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이상동기 범죄를 예방할 수 있겠냐는 근원적인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 탓이다. 전문가들은 범죄 이면에 감춰진 경제적 양극화와 구조적 사회 불평등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회적 연대를 기초로 한 안전망 확충과 같은 근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지난 7일 국회를 통과한 생명안전기본법은 누구나 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생명·신체·재산을 보호받고 살아갈 권리인 ‘안전권’을 처음으로 명시했다. 정부가 5년마다 안전권 증진을 위한 ‘생명안전종합계획’을 수립하도록 했으며, 대통령 소속 생명안전정책위원회를 신설해 관련 사항을 심의·조정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상동기 범죄가 해마다 40건 안팎 발생하고 있다. 각종 대책에도 불구하고 아무 이유도 없이 생명을 위협받는 사례는 끊이지 않는다. 구체적인 예방안이 생명안전종합계획 마련을 위한 후속 제도에 포함돼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일 터다. 경찰 대응과 함께 의료·복지·지역사회가 긴밀히 연계된 조기 개입체계를 구축하는 일도 시급하다. 생명안전종합계획에 반영돼야 할 것이다.
생명안전기본법은 안전사고 피해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 목격자 등 관련자를 ‘피해자’로 규정하고 이들이 사고원인과 정부의 안전사고 대응 적정성에 대해 조사를 요구하고 참여할 권리 등을 보장하고 있다. 그간 억울함을 호소할 길 없었던 이상동기 범죄 유족도 알권리와 참여권, 정보접근권, 회복 지원 등을 누릴 것으로 기대된다.
2016년 5월 서울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일면식도 없던 남성에게 살해당했을 당시에도 온 나라가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떠들썩했다. 10년이 지났는데도 시민은 여전히 ‘안전한 귀가’를 운에 맡겨야 하는 현실이다. 또다시 10년을 허비할 순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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