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B 도서관에 잘못 반납했다는 문자가 왔다. 앗, 실수! 그런데 그 문자를 본 친구가 환한 얼굴로, 너도 이젠 점점 기억력과 총기를 잃어가는군. 기쁘다! 늘 네 기억력과 총기가 부러웠는데, 이젠 너도 어쩔 수 없는 노화의 강을 건너가게 되었네. 아니야, 이건 노화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내 부주의함 때문이야. 새파랗게 젊었을 때도 가끔 이런 일이 있었잖아. 하하하, 노화 맞아. 그런가.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야. 도서관끼리 관계망 시스템이 잘되어 있어, 즉각 이걸 파악, 제자리로 되돌려놓을 수 있으니….
친구와 노화를 사이에 두고 한참을 웃다가 헤어져 돌아오면서 아, 맞아. 이건 부주의가 아니라 노화가 맞아. 수업 시간에 할 희곡 선정에 혹 도움이 될까 하여 이 책을 가방에 넣으면서 분명 A 도서관 도장이 찍힌 걸 봤는데도 그걸 깜빡하고, B 도서관 반납통에 아무 생각 없이, 확인도 안 하고, 그냥 무심코, 넣어버린 거잖아. 친구 말대로 노화의 한 증상이 맞아.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런 비슷한 일들이 종종 일어날 텐데… 정말 조심해야겠다.
비로소, 처음으로 내가, 나 자신이 날마다 늙어가고 있다는 걸 한 치의 변명 없이, 진심으로 직시하고, 인정했다. 그렇담 이왕 늙는 김에 좀 더 잘 늙는 기술 같은 것은 없을까. 사람들이 말하는 버킷리스트는 물론 더 즐겁게, 더 알차게 늙음으로부터 자신을 비우고 성찰해 가는 데 필요한 기술 같은 것.
어제 홍제천에서 귀여운 오리 새끼들과 놀다가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된 내 또래쯤 돼 보이는 여성도, 1년 전부터 일주일에 4~5번씩 안산 봉수대를 연습 삼아 오르내리는데, 지금은 심한 두통도 사라지고, 걷기 힘들었던 다리도 튼튼해지고, 마음마저 여유로워졌다며,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우리 나이엔 어딜 가든 혼자인 것보다는 둘이 더 낫잖아요, 하면서.
맞는 말이다. 이젠 어딜 가든 동행이 있으면 더 편하고, 안심이 되는 그런 나이가 된 것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면서 서로 의지도 되는 그런 동행이.
지난 4월 말에 작은 서점을 빌려 30명가량의 독자와 함께 북콘서트를 했는데, 잘해야 한다는, 뭔가를 안겨줘야 한다는 마음을 버리고, 모든 걸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고, 함께 간다는 마음으로 진행했더니, 나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스트레스 주는 일 없이, 정말 허심탄회하고, 재미있고, 활기찬, 모두에게 유익하고 행복한 북콘서트가 되었다. 그때 느꼈다. 칼 융의 말처럼 경직된 자아에서 벗어나 자기에게로 나아가는 일 또한 노년의 미학 중 하나라는 것과 나이 듦의 기술은 잘 받아들이고, 잘 놓아 버리고, 자신을 잘 넘어서는 데 있다는 것을.
김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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