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 검찰이 한 여성을 남동생 살해 혐의로 기소했다는 기사를 봤다. 제목에 ‘탈북민(북한이탈주민)’이란 단어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읽어 보니 사건 본질은 사망보험금을 노린 살인이었다. 탈북 여부와 범행 사이에 특별한 연결고리가 있는 건 아니었다.
범죄 보도에서 출신 배경 언급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만약 북한 사회의 특수한 환경이 범행을 저지르는 데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면 맥락을 설명하는 차원에서 가해자가 탈북민임을 밝힐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적 이득을 위해 혈육을 해치는 비극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발생한다. 그럼에도 대다수 언론은 가해자를 ‘탈북민 여성’ 또는 ‘탈북민 누나’로 지칭하며 보도했다. 아니나다를까. 기사엔 “그쪽 성향이 그렇다”, “무섭다. 안 받았으면 좋겠다” 등 탈북민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과 근거 없는 공포를 드러낸 댓글들이 달렸다.
문득 이런 상상을 해봤다. 만약 어떤 기사에서 범인을 ‘서울 출신 여성’이라고 소개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많은 독자는 고개를 갸웃했을 것이다. 왜 범행 동기와 무관한 출신 지역을 언급하느냐는 항의가 빗발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탈북민’ 제목이 붙은 기사엔 이런 문제 제기가 뒤따르지 않는다. 탈북민을 ‘우리’가 아닌 다른 집단으로 구분해 바라보고 있다는 방증일 테다.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2007년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이다. 범인은 한국 국적의 미국 영주권자였던 조승희였다. 그러나 사건을 다룬 미국 언론은 그의 출신 배경을 크게 부각하지 않았다. 조씨의 범행을 한국인 집단 전체의 문제로 일반화하거나 낙인찍는 것을 경계하고, 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로 번지지 않도록 하려는 의식적 노력을 보였다. 미국 사회에서 고립된 개인의 이상징후에 공동체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문제와, 정신질환 판정을 받았음에도 합법적으로 총기를 구매할 수 있었던 느슨한 총기 규제 등 사건의 구조적 요인을 짚는 언론 분석이 이어졌다.
1997년 ‘탈북민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지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국내 정착 탈북민도 3만명이 넘는다. 탈북민을 바라보는 사회 분위기는 과거보다 나아졌지만 ‘거칠고 위험하다’거나 ‘우리 사회에 섞이기 힘들다’는 식의 근거 없는 편견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데 부정적인 사건 보도에 불필요하게 ‘탈북민’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면, 이런 편견은 더 공고해질 수밖에 없다. 기사 조회 수를 끌어올리는 데는 도움이 됐을지 몰라도 우리 사회가 얻는 건 갈등과 분열뿐이다.
정부는 최근 ‘탈북민’ 대신 북한을 고향으로 둔 사람을 의미하는 ‘북향민’을 정부 공식 문서에 사용하기로 했다. 탈북민이 지닌 부정적 어감을 줄이고 헌법과 법률에 의해 보호받는 우리 국민임을 강조해 사회 통합을 촉진하겠다는 취지다. 지난달 방한한 엘리사베트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북향민’ 용어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부르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 통합이고, 그들이 사회적 낙인 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명칭만 바꾼다고 편견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탈북민을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탈북민은 학교, 직장 등 우리 사회 곳곳에 녹아 사는 대한민국 국민이자 평범한 이웃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탈북민’이란 수식이 필요했을까. 탈북민을 배제하거나 구분짓는 대신, 우리 사회 한 구성원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상식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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