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로 기억한다. 이명박정부 첫 국방부 장관이던 이상희 장관이 국방부 브리핑룸을 찾았다.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는 별넷 대장 7명을 교체하는 군 수뇌부 인사를 직접 발표했다. 주로 국방부 인사 관련 책임자나 대변인이 도맡아 하는 일이다. 예상 밖 돌출 행동이었다. 군 대장급 인사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친 뒤 당일 오후 발표돼왔던 게 관례인데 국무회의 하루 전에 서둘러 발표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이 장관 ‘입김’이 작용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인사 발표 다음 달 국방부에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이 장관은 지휘관들을 향해 “강한 군대보다 편한 군대를 선호하고, 마치 편한 군대가 민주 군대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보기 드문 발언이었다. 그는 재임 기간 내내 군인정신과 전투형 군대를 외쳤다.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로 영어를 잘했고, 업무도 손바닥 보듯 꿰고 있었다. 업무 파악을 제대로 못 하거나 불만족스러운 답변에는 호통이 뒤따랐다. 그래서 그를 싫어했던 부하들도 많았다.
정치에는 소질이 없었다. 그해 11월 국회 사무처가 국회 국방위원회 요청으로 45년간 유지돼오던 국방부 국회연락단 철수를 요구한 사건이 단적인 예다. 당시 국방위는 국회연락단 철수 요구 이유로 이 장관의 국정감사 답변 내용 및 태도를 문제 삼았다. 실제로는 국방위 차원에서 요구한 국회연락단장(대령)의 장군 진급을 이 장관이 거부한 데 따른 ‘보복’이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국방위 사태가 보여주듯 군인 이상희는 타협과는 거리가 먼 고집불통 이미지가 강했다. 그렇지만 인재를 발탁할 때는 부하의 능력과 품성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았다. 군 최대 사조직이었던 ‘하나회’가 진급 과정에서 여러 차례 불이익을 줬지만, 하나회 출신 인사를 국방부 고위직(인사복지실장)에 파격 등용했다. 그는 ‘장관 위의 차관’으로 불리던 장수만 국방부 차관의 하극상 논란으로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권력에 굽실대지 않은 그의 강직한 면모에 많은 국민과 군인이 박수를 보냈다. 그가 10일 별세했다. 그를 향한 세간의 평가는 엇갈리지만, 그 같은 무골(武骨)을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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