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진실한 말로 어려움이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다. 그러다 보니 살다 보면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이럴 때 흔히 사과(謝過)를 한다. 하지만 자존심과 두려움 때문에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사회적 비난이나 처벌이 뒤따르고 금전적인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다. 그동안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쌓아온 명예가 실추될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이 궁지에 몰리면 단골메뉴처럼 써먹는 단어가 ‘유감(遺憾)’이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빈다’는 사과와 뉘앙스가 확연히 다르다. 사과의 선결 요건은 잘못을 명확히 인정하는 것이다. 반면 유감의 사전적 뜻은 ‘마음에 차지 않아 못마땅하고 섭섭한 느낌’이다. 사과는 하고 싶지 않고, 위기는 모면하기 위해 나오는 고육지책이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지난해 말 발생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처음으로 육성 사과했다. 김 의장은 지난달 27일 4분기 실적 발표 후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이번 일로 고객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문제는 사과의 내용과 태도, 타이밍이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국회는 6개의 연석 청문회를 가동했지만, 김 의장은 ‘글로벌 CEO(최고경영자)’를 명분으로 출석 요구를 묵살했다. 2021년 3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당시 ‘한국 기업’이라던 것과 180도 달라졌다. 미국인 김 의장에게 ‘검은 머리 외국인’이란 비아냥이 붙은 이유다. 미국 국적자인 쿠팡 임시 대표가 국회에서 “그만”이라며 책상을 내리치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졌다.
그는 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쿠팡의 대응은 자화자찬했다. 그의 말이 사과가 아닌 유감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쿠팡은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지만,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반영된 4분기 영업이익이 97% 급감했다. 당기순손실은 적자로 돌아섰다. ‘탈팡’ 효과 때문에 활성 고객 수가 10만명 감소하고, 쇼핑 등 핵심 사업부문 성장 폭이 줄었다. 글로벌 매출의 90%가 한국에서 나오다 보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쿠팡의 살길은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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