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앞세운 ‘폭군의 행동’ 숨기지 않아
새해 초부터 미국이 벼락같은 속도로 실행한 베네수엘라 현직 국가원수 니콜라스 마두로 납치 사건은 세계에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제 열흘 정도 지난 시점에 ‘확고한 결의’라 명명한 이번 ‘특수 작전’의 의미를 짚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4년 전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두 국가가 맞붙는 큰 전쟁을 벌이며 ‘특수 작전’이라 불렀다. 2026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이번 마두로 납치 사건을 ‘특수 작전’이라 불렀다. 서로 다른 이유와 배경이지만 미국과 러시아는 둘 다 제국주의적 모험에 돌입하면서도 전쟁이라는 표현만은 피하고 싶었던 듯하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들조차 왜 전쟁의 프레임만은 피하고 싶은 것일까. 전쟁을 원치 않는 국내 여론을 계산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강대국조차 전쟁에서 쉽게 승리하지 못한다는 역사적 경험을 무시할 수 없었다. 미국은 21세기 들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처참한 전쟁을 치른 뒤 실패를 인정하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에 군대 파견은 피하면서 미국이 이 나라를 운영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비용은 최소화하면서 이득을 얻어내겠다는 사업가다운 태도지만, 그건 국제 정치의 이치를 모르는 소리다. 백악관이나 마러라고 별장에서 리모컨으로 TV를 조종하듯 베네수엘라와 같은 규모의 나라를 통제할 수 있다는 상상이야말로 황당무계하다.
이번 사건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특징은 트럼프의 ‘솔직함’이다. 미국은 모든 외교적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내던져 버리고 베네수엘라에서 원하는 것은 석유뿐이라는 욕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강도가 폭행한 뒤 “내가 이 사람을 때린 이유는 돈을 뺏고 싶어서야”라고 거드름을 피우며 자랑스럽게 소리치는 꼴이다.
“위선이란 선이 악에게 보내는 찬사다.” 17세기 프랑스의 작가 라로슈푸코가 남긴 격언이다. 악을 행하더라도 선이 좋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는 의미다. 20여년 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누구나 목표가 석유라는 사실을 알았으나 그래도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명분으로 내세웠었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의 미국은 중국이나 러시아만도 못한 야만의 지경으로 추락했다. 대만과 우크라이나를 향한 중국과 러시아 야심은 적어도 민족 정체성과 같은 국제 사회의 문법을 왜곡된 방식으로나마 동원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악행을 선행처럼 포장하는 위선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과거의 제국주의조차 자신의 야욕을 ‘인류를 짊어진 백인의 문명화 의무’와 같은 원칙을 내세웠다. 힘을 앞세운 지배는 야만적인 폭군의 행동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힘을 가진 국가가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 누구라도 짓밟을 수 있다”고 공공연히, 부끄럼 없이 선포하는 모습이다. 선악의 개념조차 없다는 의미다.
앞으로 강자가 약자를 마구 대하고 지배하는 정글의 법칙이 국제 사회의 주요 패턴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분석이 대세다. 하지만 정글의 법칙이라는 표현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법이나 규칙이란 인간만이 가진 정의와 권리라는 매우 특별한 감정과 개념에서 비롯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글에는 법칙이 있을 수 없고, 원초적 생존 본능의 사슬만 존재할 뿐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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