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공직 생활 접고 바르셀로나서 인생 2막/한식·양식 섭렵한 아내와 의기투합/2016년 한국 미식·문화 담는 공간 ‘김치마마’ 열어/한식당 협회 만들어 한국인 운영 ‘진짜 한식당 인증마크’ 도입/가수 이이유도 찾아 ‘찐 한식당’ 입소문/현지인 대상 김치 강좌 9년간 50회 열어 한국 문화 전파
해외여행이 길어지면 간절하게 먹고 싶은 음식이 딱 하나 생긴다. 한국에 있을 때는 잘 안 먹던 얼큰한 김치찌개다. 우리의 DNA에 깊숙하게 각인된 탓일까. 어렵게 한식당을 찾아 이마에 땀 흘리며 김치찌개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면, 다시 먼 여행길을 나설 힘까지 얻는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도 그런 한식당이 하나 있다. 유럽인 입맛에 맞춘 ‘무늬만 한식당’이 아니라 발효과학과 매운 맛을 제대로 구현한 진짜 한식당 ‘김치마마’다. 주인장은 20년 동안 몸담은 안정적인 공직생활을 미련 없이 내던지고 무작정 스페인으로 떠난 신진호(64), 권경애(60) 부부 셰프. 그들은 매달 현지인을 상대로 김치강좌를 열어 ‘K푸드’의 매력을 알리는 데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부부의 손맛은 어떻게 김치에 익숙하지 않은 유럽인들을 사로잡았을까.
◆바르셀로나의 ‘김치 전도사’
오후 8시. 바르셀로나 스페인 광장 인근 작은 골목 카야오 12번지의 작은 식당 김치마마로 들어서자 왁자지껄한 대화 소리로 활기가 넘친다. 테이블 9개에는 손님이 가득 차 있다. 예약하지 않은 손님들은 문을 열었다가 허탈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린다. 놀랍게도 손님의 대부분은 현지인들이다. 메뉴는 김치찌개, 두부김치, 육개장, 제육·불고기덮밥, 김치전 등 한국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숙한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스페인 와인을 곁들일 수 있다는 점이 좀 다를 뿐이다.
신 대표 부부는 분주하게 음식을 나르면서도 가끔 손님 곁에 앉아 유창한 스페인어로 수다를 떤다. “김치마마는 주요 관광 루트에서 많이 떨어져 있어 일부러 찾아와야 해요. 한국인들은 주로 오픈 시간에 워크인으로 오고, 그다음 유러피언 관광객에 이어 오후 9시쯤 현지인들이 방문합니다. 한식을 즐기려는 목적도 있지만 단순히 음식을 넘어서 한국 문화를 알기 위해 오는 손님들이 많답니다. 한국 사람이 제대로 ‘찐 한식’을 하는 곳이라는 입소문이 퍼진 덕분이죠.”
2016년 문을 연 김치마마는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신 대표는 다른 한식당과 손잡고 협회를 만들어 한식당 인증마크를 도입했다. 중국 자본이 운영하는 코리안 바비큐 식당 등과 구분하고, 진짜 한식의 맛을 알리기 위해서다. 김치마마는 단순한 한식당이 아니다. 처음 오픈 때부터 ‘김치마마 가스토로노미아 이 쿨투라(Kimchi Mama Gastronomía y Cultura)’를 간판에 내걸었다. 한국의 미식과 문화를 담아내는 공간이란 뜻이다. 대표적인 행사가 매달 현지인을 상대로 열리는 김치 강좌. 신 대표 부부가 ‘바르셀로나의 김치 전도사’로 불리는 이유다. 2017년부터 시작한 김치강좌는 지난달 50회를 맞았다.
“음식에는 한 나라의 문화가 모두 녹아 있어요. 이에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죠. 하지만 처음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더군요. 김치를 먹지도 않는데 누가 강좌까지 들으려 하겠어요. 그러다 바르셀로나 한글학교 학생 30여명이 김치마마를 찾았답니다. 종강 행사로 김치 수업을 진행했는데 힘들었지만 보람이 아주 크더군요. 이에 본격적으로 김치강좌를 열었죠. 처음에는 4명도 모으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8~10명 정원이 금세 차버릴 정도로 인기가 높아요. 지난달 50회를 맞아 ‘함께 김장해요’라는 슬로건으로 30여명이 참여한 김치축제를 진행했답니다. 너무 힘들어 가끔 거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9년 동안 50회나 진행했다는 사실이 스스로 대견하네요.”
2시간30분 동안 진행되는 김치 수업은 매우 디테일하다. 새우젓과 액젓은 기본이고 비건들이 많아서 젓갈 없는 김치 버전도 알려줘야 한다. 한국의 밥은 스페인 파에야와 달라 밥 하는 방법도 강의하고, 김치전도 만들어 막걸리와 페어링도 한다. 수강생은 김치 1㎏을 만든 뒤 집에 가져가 숙성하는데 발효가 진행되면서 버블이 올라오는 사진을 채팅방에서 공유하는 등 수업 뒤에도 김치가 완성되는 과정을 서로 나눈다. “수강생들은 집에서 김치를 만들어 친구들과 같이 먹는답니다. 그러면서 한국의 문화를 얘기하죠. 김치 한 포기가 스페인 가정의 식탁에 오르는 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한국의 문화가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입니다.”
◆딴따라, 공무원, 그리고 셰프
지금은 자리를 잡았지만 신 대표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그는 사실 대학시절 베이시스트를 꿈꾸던 ‘딴따라’였다. 경북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진학한 그는 대학 밴드 ‘일렉스’에서 베이스기타를 연주하며 밤낮없이 음악에 매달렸다. 하지만 2학년을 마치고 성적 부진으로 제적됐다. 가족의 눈길을 피해 도망치듯 경북 문경시 점촌의 시골 마을로 몰래 숨어든 그는 그곳에도 음악을 끊지 못해 나이트클럽에서 진짜 딴따라 생활을 이어갔다. “추운 겨울날 아버지가 수소문 끝에 찾아와서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며 부산 서면의 입시학원 수강증을 내밀더군요. 아버지 덕분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입시에 매달렸죠.”
신 대표는 경희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해 공부에 매진한 덕분에 졸업하면 중앙부처에 취직하는 정부 특채 프로그램에 선발됐다. 재학 중에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받은 그는 1990년 옛 상공부(현 산업통상부)에서 공직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신 대표가 스페인과 첫 인연을 만든 때는 한일월드컵이 열린 2002년. 전체 중앙부처에서 딱 한 명만 뽑는 스페인 유학 프로그램 시험에 응시했는데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합격증을 거머쥐었다. 2년반 동안 스페인 살라망카대학교에서 공부하며 중남미경제학 석사를 따고 귀국한 그는 중남미 담당 부서로 발령받아 전공을 한껏 살리며 일했다.
그러다 스페인을 더 알고 싶은 욕구를 견디지 못해 2007년 휴직하고 자비로 다시 스페인 유학길에 오른다. “중남미 경제와 마케팅을 공부하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았어요. 가족과 함께 바르셀로나로 떠났죠. 3년을 공부하고 혼자 귀국해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답니다. 그런데 작은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다 보니 삶이 말이 아니더군요. 오래 고민하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2010년 공직생활을 접고 바르셀로나로 왔답니다.”
신 대표는 사표를 내고 터벅터벅 걸어 나오던 그해 늦가을 은행 잎 깔린 정부과천청사 앞길을 지금도 잊지 못한단다. 늘 청사가 답답하게만 느껴졌는데 막상 철문을 닫고 나서자 자유를 찾아 떠나는 게 아니라 더 큰 감옥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유령 가게’에서 걷어 올린 희망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신 대표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통역은 기본이고 관광 가이드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오가느라 한 달에 25일을 밖에서 자야 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2011년 여행 책 ‘바르셀로나 여행 레시피’를 출간했는데 책이 인기를 끌면서 바르셀로나를 찾는 한국 여행자들이 부쩍 늘었다.
사실 신 대표는 글재주가 많다. 시집을 5권이나 펴냈는데 1990년 출간한 ‘친구가 화장실에 갔을 때’는 시 부문 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을 정도다. 또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복지정책을 소개하는 ‘고령친화도시 행복한 노년’도 2017년 출간했다. 책 덕분에 스페인과 한국을 잇는 가교 역할도 시작했다. 한국 지자체 관계자들에게 바르셀로나 전통시장, 스마트 시티 등의 정보를 알려주고 바르셀로나 여러 대학의 MBA 과정 등에선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강의를 맡았다. 그러다 2016년 김치마마를 오픈한다.
“한국 문화를 알리는 뭔가 새로운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한식당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마침 아내가 한국에 있을 때 상공부 산하 산업기술연구원에서 15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한식·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땄을 정도로 요리에 취미가 많았어요. 살라망카 요리학교에서 스페인 요리도 배웠죠. 하지만 아내에게 얘기하니 절대 싫다며 펄쩍 뛰더군요. 그래서 몰래 혼자 가게 터를 물색하다 지금의 김치마마 자리를 발견합니다. 앞서 이탈리아, 카탈루냐 사람들이 장사했지만 다 망하고 나간 곳이었는데 이상하게 자꾸 끌려요. 가족에게 털어놓자 아이들이 ‘엄마 지금 식당 안 하면 후회할 거야’라며 찬성하기에 아내를 설득해 김치마마를 열었답니다.”
하지만 현실은 참담했다. 지인들은 식당 자리가 ‘유령가게’로 소문났다는 얘기까지 전했다. 새벽 4~5시까지 식재료를 만든 뒤 쪽잠을 자고 다시 식당 문을 여는 생활을 반복했지만 하루 종일 손님이 2명만 온 날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매년 3월 초 바르셀로나에서는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가 열리는데 한국 기업 관계자들이 검정색 벤츠 10여대를 타고 김치마마를 찾았다. 이후 동네 주민들에게 “뭔지는 모르지만 보통 집은 아닌 것 같다”는 소문이 확 퍼졌고 하나둘 현지인들이 식당을 찾아왔다.
코로나19 확산도 신 대표에게는 기회가 됐다. 나라 전체가 셧다운되면서 식당 문을 닫았지만 집에 틀어박혀 TV로 한국 드라마와 한식을 접한 현지인들이 봉쇄가 풀리자 앞다퉈 김치마마로 몰려들었다. “코로나19에 잘 대처한 한국의 방역사례가 이곳에서 대대적으로 소개됐어요. 여기에 한국 드라마까지 인기를 끌면서 한국을 보는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답니다. 특히 드라마에서 다양한 한식을 접한 현지인들이 직접 맛을 보려고 줄지어 김치마마를 찾아왔어요. 이를 계기로 한식이 현지인 음식 문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답니다. 예전엔 맵고 끈적거린다며 쳐다보지도 않던 떡볶이를 지금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주문할 정도로 인기가 하늘을 찌릅니다. 하루는 입덧이 심한 산모가 김치찌개를 먹더니 매일 와서 김치찌개만 시켜먹어요. 출산을 한 뒤에도 아가와 함께 김치마마를 찾고 있는데 자신에게 한식은 보양식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우더군요.”
김치마마 10주년을 맞은 신 대표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김치에 국한하지 말고 한국 음식 전반을 홍보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한식이 담긴 전자책을 만들어 한식 문화를 더욱 확산 시킬 작정이다. 또 여행사와 손잡고 유럽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을 직접 방문해 스토리텔링이 담긴 한국 음식을 집중 체험하는 여행상품도 개발할 계획이다. 해외에서 한식당을 열고자 하는 젊은 후배들에게는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알려주고 싶단다.
그의 첫 시집에는 신기하게도 ‘마드리드로 보내는 편지’와 ‘마드리드에서 온 편지’ 등 스페인 관련 시 두 편이 실려 있다. “나중에 시집을 보면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딱히 스페인을 동경한 것도 아니고 마드리드에 가본 적도 없는데 아마 어감이 좋아서 마드리드를 소재로 시를 쓴 것 같아요. 아마 그때부터 스페인에서 살아야 할 운명이었던 같아 신기합니다. 오늘은 마드리드가 아닌 바르셀로나에서 고국 분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한국 음식 문화는 이제 세계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으니 얼마든지 자부심을 가지세요.”
신진호 김치마마 대표는…
●1962년 부산 출생 ●경희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스페인 살라망카대학교 중남미경제학과 석사 ●스페인 바르셀로나 ESERP MBA ●산업통상부 근무 (1990~2010·전자·전력정책, 스페인 및 중남미 경제협력 담당)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 ●한·스페인 관계 전문 컨설팅사 프로모코레아 설립·대표(2011~) ●바르셀로나 한식당 김치마마 오너 셰프(2016~) ●<친구가 화장실에 갔을 때>(1990) 등 시집 5권 출간 ●<바르셀로나 여행레시피> 출간(2011) ●<고령친화도시, 행복한 노년> 출간(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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