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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란도 정신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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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6-01-07 07:00:00 수정 : 2026-01-07 07:29:56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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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와 더불어 국내 명문 사학(私學)의 쌍벽을 이루는 고려대의 영문 명칭은 ‘코리아 유니버시티’(Korea University)다. 이를 직역하면 아마도 ‘한국대’일 것이다. 영어로 한국을 지칭하는 ‘코리아’가 고려(高麗·918∼1392) 왕조에서 유래했다는 점은 한국인이라면 모두 아는 사실이라고 하겠다. 어떤 의미에선 조선(朝鮮·1392∼1910)보다도 더 중요한 존재가 고려 아니겠는가. 우리는 흔히 ‘조선 왕조 500년’이란 표현을 쓰지만 고려도 건국에서 멸망까지 무려 474년, 그러니까 500년 가까이 존속한 나라다. 고려 말기의 명신 길재(吉再)가 조선 개국 직후 옛 고려 수도 개성을 찾아가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라고 노래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고려 시대의 국제 무역항 벽란도 이미지. 소설 ‘벽란도의 비밀 청자’(문학동네·2014)에 삽입된 그림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기원 후 한반도에는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 고려, 조선 등 여러 나라가 출현했다. 그중에서도 하필 ‘고려’가 오늘날의 한국을 지칭하는 용어로 선택된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 전문가들은 고려 시대 벽란도(碧瀾渡)에서 교역하던 무슬림 상인들이 ‘고려’라는 국명을 아랍어로 ‘쿠리야’라고 부른 것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쿠리야가 이런저런 변형을 거쳐 결국 ‘코리아’로 낙착됐다는 것이다. 서방 국가들 가운데 프랑스는 한국을 ‘코레’(Coree), 독일은 ‘코레아’(Korea), 스페인·이탈리아도 ‘코레아’(Corea)라고 각각 표기한다.

 

코리아가 탄생한 벽란도는 어떤 곳인가. 학교에서는 “고려 시대에 예성강 하류에 있었던 국제 무역항이자 요충지”라고 가르친다. ‘도’로 끝나는 지명 때문에 ‘섬’이라고 여기기 쉬우나 실제로는 육지의 일부인 나루였다. 벽란도는 무역이 대단히 활발해 당시 중국 대륙을 지배하던 송(宋)나라는 물론 일본, 심지어 이슬람 상인들까지 드나들었다고 한다.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북위 38도선 이남에 있어 6·25 전쟁 발발 전까지만 해도 남한 국토였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 영토로 행정구역상 황해남도에 속한다.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7년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소속 학자들이 논문에서 “남북 통일 후 새 수도를 건설할 부지로 예성강 어귀 벽란도 부근이 적합하다”는 주장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5일 중국을 국빈으로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한·중 정상회담에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취임 후 처음으로 중국을 국빈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이른바 ‘벽란도 정신’을 언급해 화제다. 이 대통령은 한·중 양국 기업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900여년 전 고려와 송나라의 교류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활발하고 안정적인 협력 관계 중 하나였다”며 “벽란도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을 넘어 사람과 기술, 사상과 문화 교류의 장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더 주목할 점은 외교적 긴장과 갈등이 있었던 시기에도 벽란도를 통한 교역은 중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전 세계에 한국(코리아)의 존재를 알린 것은 전쟁 같은 무력이 아닌 벽란도를 통한 무역이었다는 점에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혹자는 “미국의 동맹인 한국이 어떻게 중국과 친구가 될 수 있느냐”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의 이번 국빈 방중 그리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국제사회에 ‘무력보다 더 강한 것은 무역’이란 생각이 널리 퍼졌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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