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중장기 전략·정책 수립 집약
탄소 중립·친환경 에너지 연구 진흥
인구 감소율 전국 평균比 12배 높아
소득 창출 등 주민주도형 모델 추진
섬 전문인력 양성 자립 기반 구축도
정책 지원의 사각지대에 머물렀던 대한민국의 섬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등 국가적 난제가 본격화되면서 주변부에 머물던 섬은 이제 ‘국토의 축소판’이자 국가균형발전 전략을 실험할 수 있는 핵심 공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27일 한국섬진흥원에 따르면 섬은 해양영토 주권을 강화하는 전초기지이며, 주민의 삶의 터전이자 풍부한 해양자원을 지닌 공간이다. 섬 지역은 지정학적·생태학적·사회·경제적 가치가 집약된 국가 핵심 자산임에도 접근성 제약과 고립성으로 교통·의료·교육·정주여건 등 정책 전반의 주변부에 놓여 있었다.
전국 480개 유인섬(2024년 기준) 가운데 상당수는 정기 여객선조차 기항하지 않으며 운항 중인 섬에서도 잦은 기상 악화로 결항이 반복된다. 이로 인해 주민 이동권이 크게 제한되고, 교육·의료·편의시설 접근성도 여전히 열악하다.
이러한 고립된 환경은 인구 이탈을 가속하고 있으며 실제 섬 지역의 인구소멸지수는 0.079로 인구감소지역 평균(0.197)보다 소멸위험도가 약 2.5배 높고 고령화 수준도 약 1.3배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섬진흥원 관계자는 “섬 지역의 현실을 해소하고 국토의 통합성과 결속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집중 지원과 맞춤형 투자 확대가 더 절실해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섬 정책 수립·진흥 위한 세계 최초의 전문기관
섬은 영토의 외연을 규정하는 국가 전략 자원이다. 특히 국토외곽 먼섬은 영해와 배타적경제수역(EEZ)의 범위를 정하는 핵심 기점으로, 이들 지역의 정주여건이 약화될 경우 해양영토 관리에도 공백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25년 1월 ‘울릉도·흑산도 등 국토외곽 먼섬 지원 특별법’을 제정했다. 울릉도·독도 등 총 43개 먼섬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확히 규정한 첫 법률로 이들 지역의 해양영토·국경수호 가치를 정책적으로 인정한 의미 있는 조치다.
다만 먼섬의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중·고등학교, 도서관, 응급의료기관 등 기초 생활서비스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육지보다 1시간 이상의 추가 이동이 필요하다. 보건·복지·재난·일자리·주거·교통 등에서 섬 주민 만족도는 50% 이하로 국가 최저 기준을 밑돌고 있다. 정주여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먼섬의 무인화가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먼섬을 지키는 것이 곧 해양영토를 지키는 일인 만큼 정주여건을 국가 최저 기준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국가적·체계적 지원과 국민적 관심이 요구되고 있다.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선택한 게 세계 최초의 섬 전문기관인 한국섬진흥원 설립이다. 그동안 중앙부처와 지자체에 분산돼 있던 섬 정책은 중장기 전략 부재, 지역별 편차, 중복 추진 등의 한계를 안고 있었다. 정부는 조사·연구·정책수립·진흥 기능을 전담하는 기관으로 2021년 섬진흥원을 설치했고, 섬진흥원은 지난 4년간 섬 정책의 공백을 메우는 기반 구축에 주력해 왔다.
◆기후·에너지·관광 집약된 생태공동체
기후위기는 섬의 생계와 존재 조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대표적 겨울 어종인 명태가 더 이상 국내에서 잡히지 않는 것은 기후변화로 어장 지도가 이동했기 때문이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연평균 표층수온은 18.74도로 관측 이래 최고치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0.65도, 평년 대비 1.62도나 높았다. 이는 전 지구 평균 표층 수온 상승량(0.52도)의 약 2.5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러한 해양 변화는 한류성 어종과 저서어류 감소로 이어져 섬 주민의 소득 기반을 흔들고 있다.
섬진흥원은 이에 대응해 ‘탄소중립 섬’ 실현을 위한 법·제도 연구를 추진하며 장기적 정책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폭염·가뭄으로 악화되고 있는 생활용수 부족 문제에 대해서도 폭염 취약도 진단, 용수 한계점 분석을 토대로 생활·긴급 용수 확보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탄소포집 기술을 활용한 식·음용수 공급 모델도 연구 중이다.
섬은 에너지 전환의 시험대이기도 하다. 풍부한 일조량과 자원 활용성 덕분에 섬은 친환경 에너지 실증에 최적의 입지로 꼽힌다.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체계에서 풍력·태양광 등 친환경 전환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섬에서의 실험과 적용, 확산은 한국형 에너지 전환 모델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섬진흥원은 “에너지 전환의 이익이 주민에게 돌아가는 구조에 초점을 두고, ‘탄소중립 섬’ 법제 연구, 친환경에너지 지역이익공유제, 에너지 기반 기본소득 등 주민에게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는 모델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관광·문화 패러다임 변화도 섬의 잠재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관광이 ‘보는 여행’에서 ‘경험하는 섬’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섬은 디지털 전환(DX)과 결합된 새로운 콘텐츠의 무대로 부상하고 있다. 섬진흥원은 섬 캠핑·워케이션·투어링 등 새로운 관광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섬 숙박 품질 관리를 위한 인증제, 사라져가는 무형유산을 기록·보존하는 ‘섬 디지털 박물관’(가칭) 구축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섬, 소멸을 넘어 기회의 땅으로
섬진흥원은 섬 공동체 회복이 주민이 지속가능하게 살아갈 기반을 재구조화하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섬 주민을 중심으로 공동체 발전계획 및 전략을 수립하고 실질적인 소득을 창출할 체계를 만드는 ‘섬 특성화사업’을 2022년부터 추진해 왔다. 섬 특성화 사업은 ‘섬 주민의 역량 기반 → 주력 분야(소득원 발굴) → 확장연계(소득 안정화) → 자립역량(지속가능성 확보)’의 단계를 거쳐 섬 주민 스스로 발전모델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한 ‘주민주도형 공동체 사업’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주민들은 시설·인프라 중심의 하드웨어 지원에서 나아가 주민조직화·역량강화·브랜딩·상품화 등 자립을 위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 중심의 지원을 받게 된다. 섬진흥원은 올해 11개 시·군과 위수탁 협약을 체결해 전국 36개 섬 마을을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화사업이 현장에서 안착할 수 있도록 섬 주민, 공무원, 활동가 등을 대상으로 기초 및 단계별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섬 전문인력 양성의 기반을 단계적으로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조성환 섬진흥원장 “섬의 다양성 보존해 K문화 원천 만들 것”
“섬의 다양성을 보존해 K문화의 원천을 만들겠습니다.”
조성환(사진) 한국섬진흥원 원장은 “국내에 공식 등록된 유인도 480개 섬의 장례문화가 다 다르듯 그 섬이 가진 고유의 문화, 생태, 경제적 가치를 보존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원장은 27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섬은 고립성으로 인해 육지와 다른 고유의 문화와 환경이 존재한다”며 “이를 특수한 사업으로 다루고 연구해 특별하게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올 5월 섬진흥원 2대 원장으로 취임한 조 원장은 개원 4년차를 맞아 현장 적용과 실용주의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다. 섬 발전 지원 사업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섬 정책의 방향 전환도 꾀하고 있다. 조 원장이 구상하는 것은 ‘섬 박물관’이다.
조 원장은 “480개 유인섬의 이야기와 문화를 유물이나 유적이 아닌 미디어아트로 표현해 일반인에게 알리고 현장 방문을 유도하기 위해 섬 박물관을 구상하고 있다”며 “주민 편의시설이나 도로 구축 등 하드웨어적인 관점과 별도의 현장 중심의 소프트웨어적인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섬진흥원이 2021년 설립 이후 지난 4년간 조직 및 규정 정비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도약의 시대’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라는 게 조 원장 소신이다. 그는 “연구원들의 기초 연구나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정책에 직접 반영되는 실용적 연구만 수행하도록 방향을 전환할 것”이라며 “방대한 연구 보고서 대신 실제 사용 가능한 20~30쪽 분량의 실질적인 정책 반영 연구 과제를 연 30~40건으로 확대하겠다”고 귀띔했다.
섬마을 한 곳당 최대 9년간 50억원이 투입되는 섬 지역 특성화 사업은 상향식 개발 모델이 원칙이다. 조 원장은 “기존의 정부 주도(하향식) 방식이 아닌 지역 주민이 섬의 고유한 자원 등을 활용해 직접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고 추진하는 상향식 모델”이라며 “프로젝트 매니저(PM)가 주민들과 1년간 소통하며 아이템을 선정하고, 주민 조직화를 통해 사업을 진행한다”고 전했다.
조 원장은 특성화사업의 성공 사례로 전남 여수시 화태도 ‘돌문어 숙회 밀키트’와 인천 옹진군 연평도 ‘연평 방앗간’ 등을 꼽았다. 이들 특화상품은 단계별 승급 심사를 통해 해당 섬의 주력 아이템으로 개발돼 판로 확장을 거쳐 섬 주민의 소득 창출과 섬마을 활성화에 이바지할 예정이다.
섬진흥원은 내년 여수에서 열리는 세계섬박람회 기간 ‘한국의 섬’ 홍보관을 운영한다. 조 원장은 “여수섬박람회가 섬의 글로벌 축제이자 국내외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협력 플랫폼이 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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