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 재개발과 종묘를 둘러싼 서울시와 정부의 입씨름이 점입가경이다. 종묘에 신주로 계신 조선의 왕과 왕비들께서도 심기가 불편할 것 같다. 고조선 이래 대한민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세계에서 열 손가락에 꼽히는 무역 대국이 될 만큼 잘살고, K컬처로 지구촌 곳곳에서 인기 상한가를 치고 있는 때에 자신들을 상징하는 종묘가 소동의 진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사 절차를 놓고 싸우다 상대 쪽의 목숨을 빼앗는 옛날의 못난 짓(‘을사사화’)을 21세기 대한민국이 되풀이할 리는 없겠지만, 상대방 죽이기에 극성인 요즘 정치 행태를 떠올리면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재개발안에 대한 정부(국무총리, 문화체육부 장관, 국가유산청)와 여당 의원들의 비판은 매우 공격적이다. 문체부 장관은 재개발 계획을 “세계 유산 보존 원칙을 무시한 1970년식 사고” “하늘을 가리는 건축을 추진하는 행위”로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면서 국가유산청장에게 “법령 제정 개정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보고하라고 했다. 또한 “장관으로서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 문화유산을 지키겠다”라고 다짐했다. 국무총리는 “근시안적 단견” “문화와 경제, 미래 모두를 망칠 수 있는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를 포함해 이미 여러 차례 비난했다.
이에 대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슬럼화된 지역을 개발해 종묘의 가치도 높이고,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종묘와 남산을 연결하는 거대한 녹지 축을 만든다면서 “정부와 서울시 입장 중 무엇이 단견인지 공개 토론해 보자”라고 맞섰다.
세운상가 지역의 개발은 20여 년간 끌어온 방치된 난제이다. 주민들은 노후화로 흉물이 된 건물, 안전에 대한 불안감, 좁다란 골목길과 판자촌의 불편함, 건축물 고도 제한에 따른 피해 등으로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또한 서울시의 개발안에 대한 여권의 비판이 내년 6·3 지방선거를 겨냥해 야당 소속 차기 유력 후보인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한 견제라는 점에서 앞으로 계속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할 것도 예상된다.
종묘의 가치와 역사성은 ‘무조건 지키기’가 아니라 시대정신과 살기 좋은 도시를 반영하는 창의적 재탄생을 통해 지속적으로 찾아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오늘과 현대를 사는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영원히 살아있는 종묘가 되는 것이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면 종묘도 현재와 대화에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서울이라는 도시와 종묘라는 역사의 더 나은 결합을 위해서는 일방적인 비난이 아니라 개발안에 대한 구체적인 토론이 필요한 때이다. 종묘에 모신 왕과 왕비들도 21세기의 후손들과 더욱 가까워지는 재탄생을 환영할 것이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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