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우낙 박사(82)는 2차 세계대전의 폐허와 공산주의의 그늘 속에서 성장한 체코 출신의 원로 종교지도자요, 평화운동가이며 교육자다. 공산정권 아래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를 외치던 청년 지도자였고, 1970년대 초에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운동을 조직했다는 이유로 3년 8개월의 징역형을 살았다.
989년 ‘벨벳혁명’ 이후 그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과정에 참여했고, 이후 체코상공회의소에서 한국위원회 의장을 맡아 20년간 양국 관계 증진에 힘써 왔다. 그는 선문대 글로벌 부총장으로도 활동하며 한·체코 간 교류를 이끌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체코 대학생 192명을 인솔해 한국의 교육·연구 프로그램을 연계할 만큼 양국 간 가교로서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에도 체코 과학기술대 학생 14명을 이끌고 광주과학기술원(GIST), 울산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등을 시찰했다.
그의 삶은 유럽 현대사의 격랑과 거의 그대로 겹친다.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사상의 자유를 잃어버린 시대를 통과했고, 민주화의 열망이 거리에서 폭발하던 순간을 몸으로 겪었다. 감옥에서 보낸 청춘, 비밀경찰의 감시를 피해 이어간 신앙과 운동, 그리고 체제 전환 이후의 재건 과정까지. 이런 경험은 오늘날 그가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눈에 깊은 층위를 더해주고 있다.
우낙 박사는 한반도 통일을 “세계평화의 구조적 조건”으로 바라본다. 그는 “힘으로는 절대 통일할 수 없다”며 “신뢰 구축과 인도적 접근을 중심으로 한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북한 주민 2,500만 명이 수십 년간의 체제와 이념 속에서 강한 결속을 이루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 채, 군사력에 의존한 ‘단기 처방’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착각이라는 것이다.
그가 ‘통일의 골든타임’으로 기억하는 시점은 1991년 12월이다. 문선명·한학자 총재 내외가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하고, 12개 항목의 협력 합의를 이끌어냈던 때다. 그는 “그 선언은 남북이 적대의 역사를 넘어 새로운 질서를 설계할 수 있는 출발점이었다”며 “한국 정부와 사회가 그 기회를 통일의 전환점으로 활용했어야 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한국 정치권과 일부 종교계가 냉전적 사고에 머무른 채 비판과 경계에만 매달림으로써, 역사적 호기를 스스로 흘려보냈다고 지적한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장례식 조문을 둘러싼 혼선과 박보희 보좌관의 ‘사실상 망명’ 사태 역시, 그가 보기에 한국이 통일의 문을 스스로 좁혀버린 상징적 사건이다.
“통일을 향한 길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서로를 향해 쏟아냈던 오해와 불신을 솔직하게 다루는 것입니다. 잘못된 선택을 인정하고, 그 위에 새로운 신뢰를 쌓을 때 비로소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습니다.”
우낙 박사는 특히 젊은 세대의 통일 무관심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 체코에서도 민주주의 세대는 공산주의의 참혹함을 실감하지 못했고, 한국 역시 분단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서 젊은 세대가 ‘현상 유지’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도 독일처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채택했지만, 결국 김일성 일가의 세습 이념으로 변질되었다”며 “주민들이 지도자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일종의 ‘무신(無神) 종교’가 형성된 특수한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기에 독일 통일 모델을 기계적으로 한반도에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통일 전략에 있어서도 그는 정부 주도 방식에서 벗어난 ‘전사회적 접근’을 주문한다. 체코 민주화 과정에서 정부, 시민단체, 종교계, 학계가 함께 움직일 때 변화의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던 경험을 떠올리며, 한국에서도 민간 교류 재개, 청년 교류 확대, 학술·문화 협력 등 여러 층위의 노력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통일은 외교·안보 정책을 넘어, 교육·문화·가치관의 재구성까지 포괄하는 ‘미래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일해저터널과 베링해협터널로 상징되는 ‘국제평화고속도로’ 비전도 강하게 지지한다. 인프라 연결은 갈등을 구조적으로 약화시키는 장치라는 해석이다. “도로와 철도는 단순한 교통 수단이 아닙니다. 로마가 길을 만든 순간 세계가 하나로 이어졌듯, 인프라는 평화의 구조를 고정시키는 힘을 갖습니다. 한일해저터널은 한국과 일본의 신뢰 회복과 청년 교류 확대, 경제 협력 심화를 동시에 이끌 수 있는 100년짜리 평화 인프라입니다.”
체코와 한국의 협력에 대해서도 그는 미래 세대의 교류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체코 기업은 한국의 기술력과 제조 역량을 높게 평가하면서, 첨단 산업·에너지·교통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확대하고자 한다. 동시에 선문대를 비롯한 한국 대학과 체코·슬로바키아 대학 간 GCD 프로그램은 양국 청년이 함께 과제를 해결하며 서로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우낙 박사는 “미래 세대의 교류가 국가 관계의 질을 결정한다”며 “청년들이 서로의 나라를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그 어떤 정치 선언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동유럽 출신인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견해도 분명히 밝혔다. 체코는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돕고 있지만, 그는 “전쟁은 군사력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며 “경제, 가치, 종교, 문화가 모두 함께 움직여야 진정한 평화에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장기적 해법은 결국 평화 교육, 관용 교육의 확산에 있다. 이는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과도 정확히 포개진다.
우낙 박사는 한국이 가진 독특한 가치와 책임에 대해서도 차분히 짚어줬다. 그는 “한국은 태평양 시대의 중심국가로서 내부 갈등에 에너지를 소모하기보다 협력과 조화를 선택해야 한다”며 “가정은 한국 문화의 근본이며,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를 존중하는 전통은 세계의 젊은이들에게도 강한 매력으로 다가온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이러한 가치는 내부 결속은 물론, 세계 평화의 비전을 구체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는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지 않습니다. 수많은 희생과 선택이 쌓여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한반도의 평화 역시 누군가의 헌신과 진실을 직시하려는 용기 위에 꽃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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