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오전 한 아파트 공터에서 중년 남녀가 팔과 다리를 느릿느릿 움직이며 태극권을 한다. 젊은 아빠와 양 갈래로 머리를 묶은 예닐곱 살 딸은 비스듬히 떨어지는 햇살 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농구공을 퉁기고 있다. 창문에는 쉬는 날 몰아서 한 빨래들이 널려 있다. 아파트 한구석에는 이 모든 장면을 풍경으로 놓고 사진을 찍는 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삼각대와 ‘셀카봉’을 든 관광객들이다. 홍콩 유명 관광지로 자리 잡은 초이홍아파트의 일상이다.
언제부턴가 현지인들의 생활 공간이 유명 관광지가 되고 있다.
일곱 색깔로 칠해진 초이홍아파트 창문 안으로는 냄비와 플라스틱 세제 통, 양말과 늘어난 반소매 티셔츠 등 주민들의 적나라한 일상이 들여다보인다. 관광객들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바쁘다. 한 무리가 사진을 찍고 자리를 비켜주면 뒷줄에 서있던 다른 무리가 같은 곳에 서서 똑같은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사진 촬영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문이 무색하게도 아파트에선 종일 카메라 셔터 소리가 이어진다.
관광에는 본래 불편한 단면이 있다.
관광지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어떤 방식으로든 대상화하고 침범하는 행위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요즘 대두하고 있는 ‘과잉관광(오버투어리즘)’ 문제는 관광객의 많고 적음보다는 근본적으로 현지인의 일상을 구경거리로 바라보는 관광객의 달갑지 않은 시선에서 비롯한다. 19세기 유럽인들이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식민지 풍경을 ‘이국적인 오락거리’로 소비하던 행태가 오늘날 비판받는 것도 같은 이유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중국인 손님을 받지 않겠다고 해 논란이 된 서울 성동구 성수동 한 카페 주인은 ‘한국인 손님들이 중국인 관광객을 싫어한다’고 밝혔다. 한국인 손님들은 왜 중국인 관광객이 싫을까. 그들 역시 성수동의 소음공해에 일조하는 ‘관광의 주체’였지만, 중국인 관광객이 찍는 사진 속 ‘관광의 대상’으로 입장이 바뀌어 보니 느껴진 불쾌함이 있지 않을까. 그제야 문제를 알아챈 건 아닐까. 수년 전부터 성수동은 카페 거리에서 쏟아지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았다. 과잉관광 문제로 주민 피해가 늘어나자 급기야 국내에선 수십년 전 사라진 ‘통행금지’ 정책이 부활했다.
서울 종로구는 관광객들로 인한 주민들 소음 피해를 막기 위해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관광객 방문을 허용하고 그 외 시간은 제한하고 있다. 올 7월부터는 북촌 일대 전세버스 통행도 제한하고 있는데 내년 1월1일부터는 이를 어기는 전세버스에 과태료도 부과할 예정이다.
행정적 조치로 과잉관광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관광에 내재한 ‘불쾌한 시선의 문제’는 남아 있다. 여전히 현지인의 일상은 SNS 속에서 ‘감성적인 사진’으로 소비되고, 현실의 삶은 프레임 밖으로 밀려난다. 기왕에 성수동 카페가 논란이 됐으니, 현지인들의 삶을 존중하는 진정한 ‘현지 감성 여행’을 제안한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 무렵, 초이홍아파트에서 관광객들이 하나둘 자리를 뜬다. 빨래가 걸려 있는 창문마다 안에서 불빛이 켜진다. 단지에는 밥 짓는 냄새가 풍긴다. 비로소 원래 모습을 되찾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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