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추진잠수함의 연료를 우리가 공급받을 수 있도록 결단해달라.” 이재명 대통령은 29일 경주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핵잠수함 연료 공급’ 의제를 꺼냈다.
이 대통령은 자체 기술 건조 의지를 밝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한화오션이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에서 만든다고 선언했다. 미국에서 만들고 인수하라는 의미로 보인다.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보유 의지를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와 연계, 미국 내 고용창출을 비롯한 산업적 효과를 키우고, 글로벌 잠수함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크다는 해석이다.
트럼프 대통령 선언에 따라 핵추진잠수함을 필리조선소에서 만들면, 건조와 운영유지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잡게 된다.
한국 정부는 후속 협의를 통해 법적·제도적 개선을 추구하고 접점을 찾으면서 국익을 지켜야 하는 과제를 떠안은 셈이다.
◆실제 건조까진 해결 과제 많아
이 대통령의 요청은 ‘핵추진잠수함을 만들테니, 농축우라늄 원료를 공급해달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은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가 사실상 가로막힌 상태였다.
 
 
            미국과 합의를 통해서만 우라늄을 20% 미만으로 농축할 수 있다. 군사적 이용도 불가능하다.
국내에서 핵연료를 제조하거나 해외에서 구매하려면, 원자력 협정 개정과 더불어 핵연료의 군사적 이용을 허용하는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특히 미국에서 핵연료와 관련 기술을 받으려면, 원자력 협정 개정과 더불어 별도의 특별 협정이 필요하다.
1958년 영국은 미국에서 핵연료와 핵기술을 받으면서 미·영 상호방위협정(MDA)을 맺었다.
MDA는 미국이 영국에 잠수함용 원자로 및 핵연료를 공급하는 법적 근거가 됐다.
MDA 없이 핵연료 이전을 추진하려면 광범위한 법률 검토와 국가안보 분야 평가, 여러 부처의 승인을 받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를 모두 거쳐도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만 승인이 이뤄진다.
 
 
            한국도 미국과 MDA와 유사한 협정 체결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핵 비무장국이 핵물질을 무기로 전용하지 않도록 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체계와 관련, IAEA와도 협의가 필요하다.
핵연료 확보 절차가 매우 복잡하지만, 잠수함과 원자로를 국내에서 제작하고 핵연료만 수입 또는 국내 제조하면 핵추진잠수함 관련 기술을 충분히 축적할 수 있다.
농축률 20% 수준의 저농축 핵연료를 사용해서 5∼10년마다 핵연료를 교체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해도, 국내에서 작업하므로 부작용을 다소나마 줄일 수 있다.
국내 연구개발 과정에서 해군 요구성능(ROC)을 쉽게 반영할 수 있고, 창정비와 성능개량도 쉽다.
국산 잠수함 수출도 탄력을 받는다. 최첨단 무기인 핵추진잠수함 건조 경험을 토대로 글로벌 잠수함 시장에서 K방신의 입지를 더욱 탄탄히 다질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선언대로 필리조선소에서 핵추진잠수함을 만들면, 이 모든 효과는 누리기 힘들다.
비용 지출이 늘어나고, 미국이 주도권을 잡은 상황에서 잠수함 관련 모든 분야에서 일일이 미국과의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한국의 의중을 관철하는 것도 제약이 따를 가능성이 크다.
우선 잠수함 사용자 입장인 한국은 막대한 비용을 미국 내 산업기지 투자와 생산능력 확충 등에 써야 한다.
군함 건조능력이 없는 필리조선소에 대한 시설 투자, 산업기지 확장, 공급망 확보, 건조 및 운영 유지와 교육 등에 소요되는 비용이다.
오커스(AUKUS)에 참여하는 호주는 핵추진 잠수함을 얻고, 미국에서 고농축 우라늄을 핵연료로 공급받는다.
그 대가로 2030년까지 80억 달러(11조 5000억원) 이상을 미국·영국에 투자 형태로 분할 지급한다.
 
 
            이후 매년 수십~수백억 달러 규모로 추가 투자를 한다. 30년간 누적 액수는 최대 2400억 달러(344조원)로 추산된다.
한국은 호주의 계획보다 규모가 적은 4척을 보유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막대한 예산 지출은 불가피하다.
한국형차기구축함(KDDX)을 비롯한 대형 수상함 확보에 골몰하던 해군에 큰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군 소식통은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운영 예산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해군 예산이 모두 핵추진잠수함에 매몰될 것”이라며 “앞으로 해군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로와 핵연료도 문제다.
국내에선 잠재적으로 잠수함용 원자로 설계·제작에 활용할 기술 연구가 이뤄지고 있고,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이 완료되면 우라늄 농축 등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도 있다. 국내 건조 시 활용이 가능하다.
그런데 미국 본토에 있는 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하면 미국 기술로 만든 원자로가 쓰일 가능성이 높다. 국내 기술을 활용하기가 어려워진다.
핵연료도 변수다. 농축 수준과 제공 방법 등은 미국의 의중에 달렸다.
농축율 90% 이상의 고농축 핵연료를 얻으면 잠수함 수명주기(30년 이상) 동안 핵연료 교체가 필요 없어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미국이 농축률 20% 수준의 저농축 핵연료를 앞세우면 사정은 달라진다. 5∼10년 주기로 핵연료를 교체해야 하는데, 이를 진행할 장소가 문제다.
원자로를 비롯한 추진체계 정비는 건조가 이뤄진 조선소에서 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필리조선소에서 핵연료 교체 작업을 한다면 한반도에서 미국 동부해안까지 수천㎞를 항해해서 필리조선소에 입항한 뒤 작업을 하게 된다. 2년 이상 잠수함은 조선소에 발이 묶여 작전 불능 상태가 된다.
한반도 근해에서 실제 작전이 가능한 핵추진잠수함은 1∼2척 정도에 불과할 수 있다.
국내에서의 핵연료 교체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관련 인력과 설비 확보, 핵연료를 미국으로부터 반입하는데 필요한 제도적 절차와 비용 지출 등이 그것이다.
미국에 의한 고강도 기술통제가 이뤄질 가능성도 크다.
미국 핵추진잠수함 기술은 원자력 에너지법, 국방물자관리규정(ITAR), 정보보안 등에 의한 고도의 통제와 관리를 받는다. 이를 통해 미국은 핵추진잠수함 분야에서 배타적 기술 지배권을 유지한다.
필리조선소에서 핵추진잠수함을 만들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핵추진잠수함을 원하는 서방 국가들에게 보유를 허락하되, 미국 조선소에서 건조하라는 조건을 붙이는 것이다.
이를 통해 타국의 기술 축적 기회를 원천 차단하는 한편 고강도 기술통제를 적용해 미국 내 기술 유출 위험도 차단한다. 결국 미국은 서방 세계에서 핵추진잠수함 건조에 대한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필리조선소 건조·도입 카드는 미국 록히드마틴 공장에서 제작한 F-35A 스텔스 전투기를 들여오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거액을 들여 첨단 무기를 구매하고도 기술 축적이나 고용 창출 등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필리조선소에서 만들어진 핵추진잠수함의 핵심 장비와 기술에 대한 고강도 기술통제가 적용되면, 한국은 정비조차 제약을 받는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핵추진잠수함 전체에 다 (건들지 말라는) 봉인이 붙어버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의미와 능력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
이 대통령은 ‘중국 쪽 잠수함 추적’을 핵추진잠수함 도입 이유로 들었다. 유사시 발해만이나 산둥반도에서 출항할 중국 해군 잠수함을 추적·견제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냉전 시절 미국은 태평양 작전을 맡고, 일본은 오키나와를 비롯한 극동지역 후방기지 역할을 수행하며, 한국은 한반도 주변 해역 방어와 미군 작전 지원을 담당했다.
이와 유사하게 한국이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중국 해군을 견제하면, 미국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전력을 집중할 수 있다.
오커스(AUKUS)를 통해 전력화될 호주 해군 핵추진잠수함이 대만 해협으로 전개하는 것까지 감안하면, 미국의 군사적 부담은 한층 줄어든다.
문제는 한국의 핵추진잠수함이 한반도 근해 작전에서 효용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핵잠수함은 수심이 깊은 곳에서 작전하며 장거리 항해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서해는 수심이 너무 얕다. 서해에서의 한국 해군 작전은 대부분 단거리다. 핵추진잠수함의 진정한 강점은 장거리를 빠르게 항해하는 것인데, 서해에선 이같은 특성과 부합하지 않는다.
P-8A 해상초계기나 무인잠수정 등을 유기적으로 활용해서 대잠수함 작전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지적이다. 동해는 수심이 깊지만, 북한 해군 잠수함을 소수의 핵추진잠수함만으로 막기는 어렵다.
 
 
            핵추진잠수함의 강점을 활용하려면, 정부의 안보전략과 해군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역내 안보에 초점을 맞추던 것에서 벗어나 전략적 자율성에 따르는 책임을 기꺼이 지면서 글로벌 이슈에 참여하고, 미국의 군사적 움직임에 적극 동참하는 대외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해군 기동함대와 핵추진잠수함을 인도태평양 해역에 투입해서 미국 등 우방국들과 함께 움직이며 해상작전을 펼치는 글로벌 동맹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해군은 글로벌 해양안보협력 강화 방안을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 제시한 바 있다.
해양영역인식(MDA) 발전을 위해 우방국 해군과 양해각서 체결을 통해 정보공유 협력을 진행하고, 정보융합센터를 신설해 해적·밀수·테러·해양사고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융합해서 관련 기관에 전파하게 된다.
함정 출·입항이 쉽고 군수지원과 긴급 의료지원이 가능한 해외 협력항만 확보 작업도 추진될 예정이다. 오세아니아와 동남아, 중동이 대상 지역으로 꼽힌다.
해군이 예전부터 추진했던 활동영역 확대에 핵추진잠수함을 추가할 수는 있다. 다만 정부 차원의 안보전략과 연계되어야 시너지가 극대화된다.
안보전략을 수립하고, 그에 맞는 군사력 건설 요소를 식별한 뒤, 해군 전력과 인력 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국방획득체계에 따라 장비를 국내 개발하거나 해외 구매하는 방식을 적용해야 국가·국방·군사전략에 핵추진잠수함이 문제 없이 포함될 수 있다.
기존의 재래식 잠수함과 핵추진잠수함과의 공동 운용 문제, 중국·북한을 겨냥한 군사전략 재편 등도 필요하다.
문재인정부 시절 갑작스레 등장했던 경항공모함 사업은 이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아 사업이 중단됐다.
핵추진잠수함 보유는 노무현정부에서 좌초된 이래 문재인정부에서도 미국과의 협상을 통한 시도가 이뤄졌다. 하지만 잠수함 보유도, 핵연료 확보도 실현되지 못한 채 잊혀졌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핵추진잠수함을 이 대통령은 다시 불러냈다. 그것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첨단 무기를 확보하는 것은 국방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다만 제도적·정치적·기술적 리스크를 살피면서 국가안보전략과의 연계 등을 철저하게 분석해 미국과의 협의에 임해야한다는 지적이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대형 프로젝트인 만큼 국익을 지키는 정책과 대미 협상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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