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납치·감금·고문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피해 신고 건수가 2021년 4건, 2022년 1건, 2023년 17건에서 지난해 220건, 올해 들어서는(8월까지) 330건에 달했다. 피해 한국인 상당수가 고수익 미끼 취업 사기에 속아 범죄 조직에 납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와중에 한국인 대학생이 8월 초 납치된 뒤 고문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충격적인 소식도 전해졌다. 살인 혐의로 중국인 3명을 기소했다지만, 피해자 시신은 아직도 한국 땅을 밟지 못했다고 한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각종 사기와 납치 범죄가 활개 치는 현실은 그동안 방송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조명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에 파견된 3명의 경찰을 통해 대응하는 데 그쳤다.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현지 경찰과 함께 수사를 진행하는 ‘코리안데스크’(한인범죄 전담 경찰)는 아예 없는 상태다. 경찰은 오는 23일에야 코리아데스크 설치 문제를 논의한다고 한다. 외교부는 지난해 6월 캄보디아 범죄 조직에 납치된 국민 구조 요청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로부터 1년이 넘게 흘렀지만 달라진 게 없다. 정부의 존재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캄보디아에서의 우리 국민 피해와 관련해 외교부에 ‘총력 대응’을 지시했다. 앞서 외교부는 10일 오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대한 여행경보를 ‘여행자제’에서 ‘특별여행주의보’로 상향 조정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반정부 시위로 70명 넘게 사망한 네팔 등에 내려진 조치로 현지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의미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날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초치해 대책 마련을 강하게 촉구했다. 하지만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가 3개월째 공석인 상황임을 고려하면 ‘뒷북 대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개인이 먼저 사기성 광고에 놀아나 범죄 표적이 되는 데 경각심을 가져야 하지만, 정부도 이 문제를 외면해선 안 될 일이다.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 전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우고 있는 것도 걱정이다. 비상 상황 시 현지 경찰과 즉각 협력할 수 있는 공조 체계를 서둘러 구축하는 등 특단의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때다. 이미 한국인 관광객과 사업가를 대상으로 한 납치와 청부살인이 만연했던 필리핀의 악몽을 경험하지 않았나. 국민 안전을 지키는 데 국경은 없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