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특파원리포트] 한·일 신공동선언

관련이슈 특파원 리포트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5-08-31 22:51:36 수정 : 2025-08-31 22:51:36
유태영 도쿄특파원

인쇄 메일 url 공유 - +

李·이시바 회담 ‘65년 체제’ 언급
日 ‘과거사 문제 이미 해결’ 인식
역사 문제 일본 측 진정성 없이
양국 미래관계 재정립 가능할까

8월 초 일본 규슈 서쪽 ‘군함도 디지털 박물관’을 찾았을 때, 가장 뜨악한 전시물은 한·일이 1965년 수교 때 체결한 청구권협정 사본이었다. 그 옆엔 청구권협정 등을 포함한 한·일 기본조약 주요 내용을 요약한 인쇄물이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 번역본과 함께 놓여 있었다. 당시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경제협력금을 받고 강제동원 노동자 미지급금 등 대일 청구권을 포기했으며, 향후 일절 청구하지 않기로 약속했다는 내용이 빨간색 글씨로 강조돼 있었다.

군함도(하시마·端島) 탄광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의 한이 서린 곳이다. 군함도 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다 한국 측 반발에 부딪힌 일본 정부는 2015년 “전체 역사를 알 수 있게 하라”는 권고를 수용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박물관에 비치된 인쇄물은 “60년 전 이미 정리된 일을 왜 재론하느냐”고 항변하는 듯해 불쾌했다.

유태영 도쿄특파원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을 찾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양국은 공동언론발표문을 내놨다. 거기에 다시 ‘65년 체제’가 언급됐다. “양 정상은 올해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지금까지 축적돼 온 한·일 관계의 기반에 입각하여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이며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일본 측은 이 문구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식민 지배와 전쟁에 의한 법적 책임을 명확히 가리지 못한 채 ‘청구권’이라는 이름으로 덮은 한·일 기본조약이 양국 관계의 ‘기반’임을 한국 측이 재확인해줌으로써 과거사 문제는 1965년 당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일본 측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고 보는 것이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이 같은 문구로 한·일 관계 본연의 모습을 확인한 것은 처음이라며 환영했다.

대신 우리 정부의 요구는 “이시바 총리는 1998년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포함하여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언급했다”는 표현으로 발표문에 담겼다.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가 이른바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통해 한국 국민에게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한 바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셈이다. 심지어 이 대목은 이시바 총리의 TV 생중계 발표에선 언급되지도 않았다. 이 대통령 말마따나 과거사 문제는 “진심으로 피해자에 대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접근법”이 중요한데, 일본 측 호응이 충분했는지 의문이 든다.

이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 전 한·일 관계 악화로 한·미·일 공조가 삐걱댈 가능성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미리 해소해 둔 것은 ‘국익 중심 실용외교’의 일환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시바 총리의 입장을 과하게 배려해줬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 대통령은 방일 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뛰어넘는 새 공동선언에 의지를 나타낸 바 있다. 전문가들도 27년 전에 비해 훨씬 고도화한 북한 핵·미사일 능력, 미·중 갈등의 심화 등 변화한 동북아 전략환경을 반영해 한·일 협력의 차원을 한 단계 성숙시킬 필요성을 제기한다. 마침 올해 양국 관계는 환갑을 맞았고, 트럼프 관세 폭격이라는 공통의 시련도 겪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대화 재개 가능성에 대비해 한·일의 입장과 역할을 정리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취재 현장에서 만난 일본 관료나 언론인들은 새 공동선언의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다. 특히 역사 문제를 재론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게 보고 있었다. 하긴, ‘사죄는 과거에 반복적으로 했으며 다음 세대에 사과를 계속할 숙명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 역시 일본이 계승하는 역대 내각 입장 중 하나다.

믿을 구석은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고 역사의식도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는 이시바 총리의 의지인데, 그의 거취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유력한 후임으로 거론되는 이들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당연시하는 인사들이다. ‘앞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과의 진정한 우호 관계, 미래상을 그려 나가는 게 간단치 않다는 것을 새삼 절감하는 요즘이다.


유태영 도쿄특파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이유 '눈부신 미모'
  • 아이유 '눈부신 미모'
  • 이주빈 '깜찍한 볼콕'
  • 신은수 ‘심쿵’
  • 서예지 '반가운 손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