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예산삭감 등 ‘입법권 남용’
정 실장, ‘부정선거’언급은 피해
야권, 여사·특검·명태균 등 꼽아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거대 야당의 입법권 남용’이 12·3 비상계엄 선포의 주된 배경이 된 것 같다고 밝혔다. 이는 윤 대통령의 12·12 담화문 이후 계엄에 대해 대통령실 최고위 참모가 내놓은 첫 공식 입장이다.

정 실장은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선포를 통한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대통령님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면서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고뇌와 여러 가지 심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실장은 국민의힘 박준태 의원이 “누군가는 계엄이 불가피할 정도로 국정이 어려웠다, 다른 이는 그래도 계엄은 과도한 수단을 동원한 것이니 문제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다”며 “대통령 옆에서 보필하시면서 그런 부분들을 같이 느낀 소회가 있을 텐데 한번 말씀해 주시라”는 말에 이같이답변한 것이다.
정 실장은 비상계엄 선포의 이유로 야당의 탄핵 남발, 그로 인한 국정 차질, 정부 예산 대규모 삭감, 입법권 남용에 따른 삼권분립 근간인 헌법 질서가 위기에 처했다는 인식을 주요 이유로 꼽았다. 그는 “헌법 수호자로서,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대통령의 상황 인식이 아마 비상계엄조치 발동의 어떤 계기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평소 윤 대통령에게 주요 현안을 직접 보고하고, 대통령의 오·만찬 일정이 없는 날은 수시로 함께 식사하는 등 윤 대통령과 국정을 가까이에서 가장 많이 논의하는 핵심 참모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행정권과 사법권에 비해 입법권이 특별히 남용되면서 삼권분립을 근간으로 하는 헌법 질서가 큰 위기에 처했다는 인식이 비상계엄 조치의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 실장은 여당이 내년도 예산안을 4조원 감액한 것에 대해 “전례 없는 초유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새해 예산이 1월2일부터 바로 집행돼서 국정 운영 각 분야에 우리 몸속에 피가 돌 듯이 정상적인 작동이 돼야 될 텐데 그 작업에 큰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결국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만, 정 실장은 윤 대통령이 언급한 계엄 사유 중 ‘부정선거’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동안 대통령실 참모 사이에서도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유에 대해 명확히 이야기하는 이는 없었다. 윤 대통령이 담화문을 통해 밝힌 명시적 이유 수준에서 이를 짐작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 정 실장의 발언은 용산 참모진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나온 것으로 그 무게감이 남다르다는 분석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 선포 배경을 직접 설명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이 설명한 이유는 크게 야당의 연이은 탄핵안 발의, 부정선거 의혹, 예산안 삭감 등 입법 폭거, 야당의 독주를 알리기 위한 경고성 계엄 등이다.
당시 윤 대통령은 “거대 야당이 자신들의 비리를 수사하고 감사하는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사들, 헌법기관인 감사원장을 탄핵하겠다고 했을 때 더 이상은 그냥 지켜볼 수만 없다고 판단했다”며 “이들은 이제 곧 사법부에도 탄핵의 칼을 들이댈 것이 분명했다”고 말했다. 당시 12월4일은 감사원장과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탄핵안 표결이 예정돼 있었다.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이유로 선거관리위원회의 보안 취약성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작년 하반기 선관위를 비롯한 헌법기관들에 대한 북한의 해킹 공격이 있었다”며 “국정원이 점검한 결과 선관위 시스템은 데이터 조작이 얼마든지 가능했고 방화벽도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과거의 계엄과는 달리 계엄의 형식을 빌려 작금의 위기 상황을 국민께 알리고 호소하는 비상조치”였다며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이 있자 즉각적인 병력 철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반면 야권에서는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 문제, 해병대 채 상병 수사, 명태균씨를 둘러싼 논란, 부정선거 음모론에 따른 충동적 결정 등을 계엄 이유로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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