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같은 법의 엄정함 보여야 재발 막아
민주 법치국가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법부 테러가 자행되었다. 집회 참가 시민이 폭도로 돌변하여 법원을 점거하고 난동을 부린 사태는 민주화 이후 처음이다. 헌정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사건이다. 참으로 화나고 참담하고 부끄럽다. 무슨 말로도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쉽지 않다. 대통령이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눈 떠보니 후진국’을 만들더니, 그마저도 그 추종자들이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지난해 말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벌어지는 초유의 법치 무시 사태는 민주주의 역사를 후퇴시키고 있다. 법관 개인에 대한 공격은 몇 차례 있었지만, 다중이 집합해 폭행과 협박, 손괴를 자행하여 헌법 기관을 유린한 폭동 사태는 지난 35년간 없었던 일이다. 생생한 TV 화면과 초토화된 법원 건물 내외부 사진을 보니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폭력적 보수가 무너트린 공든 탑 대한민국의 현실과 미래가 참혹하고 암담했다.
법치주의에 대한 부정과 도전, 무법천지와 같은 현실은 과연 누구 탓인가. 흥분한 시민이 자행한 일회성 우발적 난동으로 치부할 수 없는 사건이다. 지금의 법치 부정에는 그 뿌리가 있고, 뿌리내림을 도와준 토양이 있다.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을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한 비상계엄 선포 자체가 법치 부정이다. 무장 군대와 경찰력으로 헌법 기관인 국회를 유린하고 비상 입법기구를 설치하려는 입법부 테러야말로 법보다 주먹을 앞세운 법원 난입 폭도의 사법부 테러와 다를 바 없다. 계엄을 선포하면서 전직 대법원장과 전 대법관을 체포 대상으로 삼은 것이나, 법관이 발부한 체포영장의 정당한 집행을 여러 차례 거부하여 사법을 무시했다. 사법부를 포함하여 대한민국을 통할하던 대통령이 내란죄의 피의자가 되자 수사기관과 사법 시스템을 불신하고 부정하니까 지각없는 시민이 따라 한 것이다. 폭동을 자행한 자들의 억울하고 분노하는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내란 피의자의 태도는 폭력 집단을 옹호하는 것으로 읽힌다. 온갖 궤변으로 수사기관과 법원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은 그의 변호인도 법원 난동을 부추긴 셈이다.
집권 여당의 모호한 입장은 무법적 극우 세력을 창궐하게 한다. 난동의 현장을 보고도 법치 유린 세력에 대한 단호한 꾸짖음과 결별 선언은 보이지 않는다. 입으로는 평화적 방법을 얘기하고 불법·폭력은 안 된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지지 세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물리적 사법 테러의 책임을 폭동 가담자가 아니라 오히려 사법부로 돌리는 태도가 말해준다. 수사기관과 사법부를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유린하는 장본인이라거나 좌파 사법 카르텔이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백골단까지 국회로 끌어들였다.
국민의힘은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고 폭력적 언동을 일삼는 반민주·반법치주의 세력과 손잡아서는 안 된다. 그들은 취재기자를 폭행하고 영장 발부 판사를 협박하는 등 민주공화국을 지탱하는 핵심 가치인 언론의 자유와 사법의 독립을 말살하려는 무리다. 정당한 공권력에 대한 불법적 공격을 국민저항권으로 포장하여 구치소까지 털라고 선동하는 세력이다. 헌법과 법률이 아니라, 거친 언사와 주먹으로 결집한 집단을 옹호하거나 부추긴다면 점차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한다.
국가 존립의 근간인 사법 체계를 파괴하고 민주공화국의 기본 질서를 무시하는 세력과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설사 법관의 판단에 문제가 있거나 판결에 불만이 있다고 해서 법관 개인에 대한 폭행·협박이나 사법부에 대한 폭력적 공격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법과 정의의 최후 보루인 사법을 부정하면 사적 제재가 난무하는 무법천지가 된다. 내란 우두머리든 법원 난동 폭도든 헌법과 법률이 정한 사법 시스템하에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깨진 유리창을 조금이라도 방치하면 법치 무시가 일상화된다. 무관용 원칙과 추상같은 법의 엄정함을 보여야 법과 정의가 살아있는 민주 법치국가가 된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