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인간’ 극한 우주 일용직
애슈턴 SF소설 ‘미키7’ 원작
빚에 몰려 우주 이민한 청년
3D직업 ‘익스펜더블’로 전락
한국사회 위험의 외주화 닮아
봉감독 특유의 풍자·유머코드
패틴슨·콜렛 등 캐스팅 화려해
2월 28일 국내서 최초 개봉
3월부터 북미 등 순차적 선봬
봐, 미키. 잘 죽고(Have a nice death), 내일 봐!”
2054년 니플하임 행성. 17번째 생(生)을 살던 ‘미키17’(로버트 패틴슨·미키)은 임무 도중 동굴 깊숙한 곳으로 추락했다. 미키와 상부를 연결하던 통신장치와 체온 유지장치도 망가져버렸다. 이내 도착한 건 구조대가 아닌 미키의 유일한 친구 티모(스티븐 연). 그런데 티모는 친구의 목숨이 붙어 있는 것보다 미키 몫의 화염방사기가 멀쩡하자 더 기뻐하는 것처럼 보인다. 티모는 미키를 거기에 남겨두고 자리를 뜬다. “무기는 내가 반납할게. 삐진 건 아니지? 그런데 미키, 죽는 건 어떤 느낌이야? (…) 잘 죽고, 내일 봐!”
우여곡절 끝에 미키는 숙소로 되돌아가지만, 그곳에는 이미 자신과 똑같이 생긴 존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상부가 이미 미키의 18번째 생, ‘미키18’을 복제한 것이다. 이렇게 미키는 두 명이 됐다. 미키17과 미키18은 사고 당시를 제외하곤 완전히 같은 기억을 가진, 심지어 DNA도 같은 두 개의 몸이다. 그러나 두 명의 미키는 공존할 수 없다. ‘멀티플’(복제된 동일 인물이 여러 명 존재하는 것)은 모두 죽인다는 행성의 규칙 때문이다. 살아 돌아온 미키17과 잘못 프린트된 미키18 앞에는 어떤 운명이 펼쳐질까.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17’이 베일을 벗었다. 봉 감독은 지난 20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작품의 주요 장면 15분가량을 언론에 선공개하고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미키17’은 미국 작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7’을 각색한 SF(공상과학)영화다. 우주 행성으로의 이민이 가능해진 미래가 배경이다. 미키는 마카롱 가게를 운영하다 망해 채무자를 잔인하게 고문하는 사채업자 무리에게 쫓긴다. 이들에게서 벗어나고자 미키가 ‘익스펜더블(expendable: 소모품)’ 자격으로 우주 이민을 지원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익스펜더블은 복제인간이지만, 그간 관객들이 SF영화에서 흔히 보던 클론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뇌하는 리플리컨트(‘블레이드 러너’ 시리즈)나 감정을 가진 로봇(스티븐 스필버그 ‘A.I’)이 아닌, 프린터기에서 서류 출력하듯 뽑아낼 수 있는 신속·정확한 대체품이라는 점이 익스펜더블의 핵심이다. 익스펜더블의 삶이 종결되면 ‘바이오 프린팅’으로 20시간 내 새 몸을 생성할 수 있는데, 미리 전송된 기억이 삽입돼 전임자의 신체 조건과 기억, 감정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익스펜더블은 치명적인 방사능 피폭처럼 위험한 임무를 맡는 소모품처럼 이용된다. 지구에선 익스펜더블 기술이 윤리적으로 금지되지만, 우주 개척 환경에선 허용된다. 봉 감독은 “가장 극한의 처지에 있는 노동자 계층으로, 죽는 게 직업”인 존재라고 익스펜더블을 소개했다. 미키의 어떤 삶은 극도로 위험한 임무에 투입돼 10분여 만에 끝나기도 한다. 이때마다 상부에선 미키를 격려한다. “이번 미키는 특별해!” “당신이 죽을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걸 배우고 인류는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로 산업현장에서 반복되는 청년들의 죽음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봉 감독은 이 작품이 “미키가 얼마나 불쌍한가, 힘든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나 하는 성장 영화”라고 설명했다. 원작의 설정을 수정해 미키의 ‘불쌍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원작소설에서 고단한 노동자로서의 자의식을 가진 역사 교사였던 미키는 망한 자영업자로 바뀌었다. 치킨과 대만식 카스텔라 등 요식업 폐업을 반복하며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 봉 감독의 전작 ‘기생충’(2019) 속 기택(송강호) 가족이 떠오른다. 미키가 죽는 횟수는 원작의 7번에서 10번이나 늘었다. “7번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더 다양한 죽음을 통해 출장을 10번 더 나가는 거죠. (이번 영화가) 거창하게 계급 간 투쟁이라는 깃발을 들고 있지는 않지만,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픈 미키의 사연에 계급문제가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다고 봅니다.”
간사회나 정치에 대한 심각한 이야기를 다루는 과정에서 유머러스한 방식의 풍자를 담을 수 있는 게 SF의 매력이라고 부연한 봉 감독은 “(‘미키17’을 포함해) 장편영화 8편을 만들었는데 절반(‘괴물’, ‘설국열차’, ‘옥자’, ‘미키17’)이 SF 또는 SF 비슷한 것”이라며 웃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라는 점 못지않게 화제가 된 건 초호화 출연진이다. 미키 역을 맡은 할리우드 스타 로버트 패틴슨을 비롯해 베테랑 배우 토니 콜렛, 마크 러펄로, 스티븐 연, 나오미 아키에 등이 출연한다. 패틴슨은 뱀파이어 청춘물 ‘트와일라잇’ 시리즈(2008∼2010)와 ‘더 배트맨’(2022) 속 슈퍼 히어로로 국내 관객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봉 감독은 새프디 형제(조슈아·베니 새프디)가 연출한 ‘굿타임’(2017) 속 지적장애 동생을 돌보는 형 역할이나 ‘라이트하우스’(2019) 속 고참 등대지기(윌럼 더포)와 갈등하는 신참 역할을 맡아 놀라운 연기를 보인 패틴슨을 주목해 캐스팅했다고 한다. 봉 감독은 “멍청하고 불쌍한 미키17과 예측 불가능하면서도 기괴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미키18을 1인2역으로 맡아 양쪽 매력을 보여 줄 배우가 누군가 생각했고, 처음부터 패틴슨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 밖에 평소 정의로운 역할을 주로 맡은 마크 러펄로는 외계 행성 개척단의 ‘매력적이지만 위험한 독재자’를 연기한다. ‘미키17’은 다음달 28일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하고, 3월 북미 등에 차례로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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