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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의감성엽서]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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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1-14 23:11:34 수정 : 2025-01-14 23: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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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자연사박물관 가는 길목에서 산사나무 열매를 먹고 있는 콩새를 만났다.

며칠 전엔 너무너무 깜찍하고 쪼끄만 상모솔새를 보았는데, 오늘은 그보다 조금 큰 콩새를 만났다. 내 발소리에 놀라 더 높은 나뭇가지로 폴짝 뛰어오르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걸음을 멈추고 올려다보니, 튼튼하고 단단한 부리, 굵은 목, 꽁지가 짧은 걸 보니 콩새가 분명했다.

콩 같은 단단한 것을 잘 먹는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지만 묘하게 그 이름과 잘 어울려 나는 많이 먹어! 많이 먹어! 다정히 소리치며, 나를 등지고 앉은 콩새의 초콜릿색 등줄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많은 이처럼 나 역시 이 지구엔 이제 공룡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읽은 공룡 책들에 의하면 아직도 이 지구 위엔 약 1만400종의 공룡이 멸종하지 않고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바로 새들! 새가 바로 공룡이란다. 그렇다면 내가 만난 상모솔새도 콩새도 까마귀와 까치, 오리, 직박구리도 모두 공룡이란 말인가.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란다. 그 때문인지 요즘은 새들에게 자주 눈이 간다. 저 작고 예쁜 것들이 공룡의 피가 흐르는 존재였다니! 세상은 알면 알수록 더 수수께끼 같은 곳이라 생각하며 부지런히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을 향해 걷는다.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 한겨울이라 바람은 세차고 스산하지만, 근사한 알몸을 뽐내는 겨울나무 사이를 걷는 것도 모처럼 유용한(?) 낭만 같아 저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가방에는 간식용으로 빵과 샤인머스캣 열 알과 엔요 두 병과 1985년도판 ‘이상 시전집’과 조원규 시집 ‘밤의 바다를 건너’가 들어 있다. 두 시인을 좋아해 매년 이맘때쯤이면 다시 꺼내 보는 시집들이다. 나와는 다른 시를 쓰지만, 두 시인의 복잡한 감성 통로를 통해 그들만의 감정 대기실로 들어서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아 이제는 절친이 된 시집들이다.

오늘은 세상사 모든 시름은 잠시 잊고 이들과 하루종일 즐겁게 놀아볼 생각이다.

자연사박물관으로 들어서니 중앙홀 한가운데 백악기 초기 공룡인 거대한 아크로칸토사우루스 골격이 우뚝 서 있다.

멋지다! 진짜 뼈는 아니지만, 미국에서 제작한 9m 길이의 대형 육식 공룡 화석으로 전 세계 자연사박물관 중 미국의 캐롤라이나과학박물관과 한국의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이 두 곳에만 전시돼 있다고 한다.

올겨울 나는 이곳에서 책도 읽고, 짬짬이 글도 쓰고, 초유의 호기심으로 3만 점이 넘는 다양한 생물 화석들과 표본들을 둘러볼 계획이다. 그들과의 지속 가능한 공존을 꿈꾸며.

김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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